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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냉전의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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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냉전의 자식들'

입력
2001.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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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남부 카리브 해의 휴양지 피그만(灣)은 1961년 4월 미국 CIA의 침공으로 역사의 현장이 됐다.카스트로 혁명정권을 전복하려던 침공은 실패했으나 쿠바가 소련에 기울면서 1년 뒤 핵전쟁 공포를 부른 미사일 위기로 이어졌다.

이 냉전의 유적에서 지난 주말 케네디 대통령을 보좌한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와 카스트로 등 두 나라 관계자들이 침공 40주년 기념 모임을 가졌다.

케네디의 여동생 등 미국쪽 참석자들은 최근 비밀 해제된 국무성 문서를 기념으로 전달했다. 문서는 피그만 침공이 CIA의 무모한 독단이며, 케네디를 당혹케 했다고 기록했다.

갓 취임한 케네디는 아이젠하워의 공화당 행정부가 추진한 침공계획을 마지못해 용인했다고 슐레진저는 회고했다.

불행한 과거와의 화해를 기원한 이 모임은 역사의 미로(迷路)를 다시 더듬게 한다. 미사일 위기 1년 뒤 발생한 케네디 암살을 추적한 연구들은 그가 피그만 침공에 필수적인 공군력 지원을 거부한 것이 암살 동기가 됐다고 본다.

케네디는 추가 침공을 위한 CIA 기지를 폐쇄하고, 미사일 위기 때는 흐루시쵸프에게 '쿠바 불침'을 약속, 카스트로 체제를 포용할 움직임까지 보였다.

또?베트남 개입을 꺼리면서, 냉전 대결을 끝낼 의지를 내비쳤다. 국내에서도 석유 재벌 등 독점 자본을 견제하고, 노조와 민권운동에 우호적이었다.

이런 이상주의적 진보노선은 CIA와 군부, 재계 등 미국적 가치와 국익 수호를 절대명제로 삼는 보수세력에게 타협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은 케네디를 국익을 해치는 존재로 간주해 제거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숱한 음모론은 특히 암살범 오스왈드가 CIA와 텍사스 석유 재벌들이 연계된 조직적 비호를 받은 흔적을 주목한다.

??이 텍사스 세력의 유망주 조지 부시가 이렇다 할 경력 없이 CIA국장과 부통령, 대통령으로 승승장구한 것을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낡은 음모론을 되풀이 하려는 것이 아니다. 텍사스 석유 재벌가 출신이 2대째 대통령에 오르자, 클린턴 행정부가 입법한 쿠바 경제봉쇄 완화조치를 보류한 채 강경자세로 돌아 선 것에서 40년 전 상황을 떠 올릴 뿐이다.

부시 가문의 두 번째 대통령을 미국과 유럽 진보 진영이 '위험인물'로 경계한 것도 레이건과 부시 전 대통령의 냉전적 세계관을 고스란히 답습한 때문이다.

시사주간 타임지는 부시 새 행정부의 외교안보 노선을 클린턴의 이상주의를 수정하는 현실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모호한 규정에 앞서, 부시의 외교안보 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국익 수호를 위한 '힘의 외교'를 공개천명했다.

그는 냉전 종식후 과도기에 세계 질서 형성을 주도하고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할 호기를 클린턴 행정부가 놓쳤다고 공격한다.

그리고 경제체제 등 미국적 가치의 절대성이 입증됐다고 선언, 인도주의 등 국제사회의 가치나 국제기구와 협정보다 오로지 국익과 미국의 가치를 추구할 것을 강조했다.

부시와 라이스 등 '냉전의 자식들'(Children 0f the Cold War)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전통적 명분조차 쳐들지 않는다.

유럽이 이들을 체니 부통령과 파월 국무, 럼스펠드 국방장관으로 이어지는 '냉전의 투사'들보다 위험하다고 보는 缺??

국가방어미사일(NMD)계획을 추진하고, 러시아와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에서 다시 경쟁자와 잠재적 적으로 규정하고, 북한과 이라크를 다시 불량국가로 부르는 것 등은 피상적이다.

진정한 목표는 냉전시대보다 확고한 패권임을 숨기지 않는 거침없는 태도가 유럽 우방을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피그만과 케네디 암살에 얽힌 음모설을 새삼 거론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산전수전 다 겪은 유럽의 판단과 대응에서 아무런 깨달 음 없이 미국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는데 급급 한다면, 한반도는 쉽게 냉전 환경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물러난 외교부 장관의 고언처럼, 자존과 국익을 지킬 비상한 각오가 없이는 그야말로 시대착오적 생존을 감수해야 할 지 모른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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