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허위의 글쓰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허위의 글쓰기

입력
2001.03.29 00:00
0 0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어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일기를 매일 쓰지 않아도 좋다'는 점이라고 한다.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이 모이면 한 두번은 꼭 자녀들의 일기쓰기가 화제로 등장한다. 일기 쓸 거리를 만들어주느라 매일 고생이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뭘 쓸지 몰라서 괴로워하는 자녀에게 '대충 쓰라'고 하고서는 부모로서 교육에 성실하지 않도록 지시했다는 점에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아예 대신 불러준다는 학부모도 있다.

그러고는 한결같이 '이제 무슨 낭비냐'고 입을 모은다.

매일 일기쓰기의 효과란 무엇일까. 기자라는, 글쓰기 전문가로서 말하자면 기껏해야 글을 쓰는데 대한 공포감을 없애주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싶다.

억지로 쓰는 일기에서 반성이 나올 리도 없고, 없는 내용을 꾸며대며 쓰다 보니 허위의 글쓰기에 익숙해지는 등 단점만 수두룩하다.

때로는 효도일기, 환경일기, 절약일기 같은 주제를 내주고 일기를 쓰라고 하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쓰게 된다.

애들은 영악해서 그 글을 내준 교사들의 의도에 맞춰 건전한 결론을 내린다. 일기를 쓰면서 청소년들은 '내 생각은 숨기고 제도가 원하는 글을 쓰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글을 쓰는 양식'이라는 논리에 도달하는 것같다. 이것이 또한 일기쓰기에서 학부모들이 가장 분노하는 사실이다.

요즘 인터넷 여론마당에 올라있는 독자들의 글을 읽다 보면 억지 일기쓰기에서 비롯된 허위의 글쓰기가 아예 뿌리를 내린 듯하다. 글을 쓰는데 주저함이 없다.

아무런 내용이 없는 글도 마구 올린다. 자기의 경험과 생각을 논리적으로 쓸 줄 모른다. 그러니 정치인과 정부를 비판한 글이 많은데 '이런 정부를 믿고 어떻게 사나' 하는 비분강개만 있을 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을 밝힌 글이 드물다.

심지어 현정부를 비판해놓고는 무작정 어느 도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는 글로 끝나는 경우도 꽤 많다. '노벨상 받으려고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구절도 근거는 대지 않은 채 단골로 등장한다.

정치 관련 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의약분업에 대해 무언가 글을 올려놓으면 '배부른 너희가 무슨 할 말이 있느냐'느니 '바로 너 때문에 문제 해결이 안돼'식의 글이 이어진다.

인터넷을 통한 자기 표현이 가능해지면서 신문이나 방송 같은 과거의 미디어는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들이 자기의 주장이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줄 모르면 결국 새로운 미디어는 글을 잘 다루는 사람의 손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의약분업과정에서 의사들과 약사들이 제 몫을 챙긴 것도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조리있게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정책은 로비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제 주장을 펼 수 있는 자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독자들도 무조건 비분강개하기 보다 정말 무슨 정책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냉정하게 관찰하고, 남이 아니라 바로 나의 시각에서 글을 쓰고 그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법을 익혔으면 한다. 또한 국민들이 올바르게 글쓰는 법을 익히도록 학교와 사회교육이 바뀌길 요구해야 한다.

서화숙 여론독자부차장

hssu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