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 남편의 비극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그는 1795년 윤 2월 13일, 남편의 묘 현릉원이 있는 화성(지금의 수원)에서 아들 정조가 정성껏 마련한 회갑연을 받게 된다.조선 후기 문예부흥을 일군 위대한 군주 정조는 그 해 어머니의 회갑과 자신의 즉위 20년을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수행원 1,800여 명과 함께 화성에 행차한다.
윤 2월 9일 창덕궁을 출발한 정조는 다음날 밤 화성에 도착해 나흘간 머물며 현릉원을 참배한 뒤 화성의 봉수당에서 어머니의 회갑연을 베푼다.
또 화성 노인 384명을 초청해 잔치를 베풀고, 과거를 실시해 인재를 뽑고, 가난한 사람과 홀아비, 과부, 고아 539명에게 쌀과 소금, 죽을 나눠줬다.
정조의 화성 행차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소상히 나와있고,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도 '봉수당진찬도'로 남아있다.
잔치는 어떠했을까. 정조는 정성을 다했다. 먼 길에 어머니를 편히 모시기 위해 새로 가마를 만들고 잘 만들어졌나 친히 살피고 가마꾼에게 예행 연습까지 시켰다.
잔치에는 혜경궁 홍씨의 친인척 82명이 초대됐다. 먼저 정조가 어머니께 첫 잔을 올리고 시와 꽃, 음식을 차례로 올린 뒤 음악과 춤이 이어졌다. 술잔은 일곱 번 올렸는데, 그 때마다 다른 음악과 춤이 베풀어졌다.
200여 년 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90분 짜리 공연으로 구성돼 4월 11일부터 15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올라간다.
올해로 개원 50주년을 맞은 국립국악원이 '왕조의 꿈, 태평서곡'이라는 이름으로 준비한 대형 무대이다. 특히 음악과 춤 뿐 아니라 궁중의상과 궁중음식까지 갖춰 잔치의 의례를 온전히 재현한다.
이는 예로써 즐긴다는 조선시대 예악정신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자 음악과 춤을 쓰이던 본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기도 하다.
옛날 궁중음악은 각종 행사나 의식에 쓰이는 것이었지 요즘처럼 감상용으로 따로 떼어 연주하던 게 아니었다.
그리고 잔치는 예를 갖춰 정성스런 마음으로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는 자리였던 것이다.
춤과 음악은 의궤에 기록된 것 말고도 국립국악원이 보유하고 있는 레퍼토리를 두루 넣어 지루하지 않게 구성했다.
대취타, 낙양춘, 수제천, 해령, 여민락, 경풍년, 염양춘(이상 음악), 헌선도, 무고, 하황은, 향발무, 학무, 수연장, 처용무(이상 춤) 등 궁중잔치에 쓰였던 것을 한 자리에 모았기 때문에 보고 듣기에 풍성할 것 같다.
잔치의 주인공인 혜경궁 홍씨 역은 그의 직계 7대손으로 올해 회갑을 맞는 홍기숙씨를 비롯해 정옥자 규장각 관장, 가야금 연주자 이재숙(서울대 교수), 이영희(한국국악협회 이사장), 홍금산(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씨가 하루씩 번갈아 맡는다.
국립국악원은 올해 회갑을 맞는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관객에게 입장권을 선물한다. E- 메일(mskim@ncktpa.go.kr)로 4월 4일까지 신청을 받아 닷새 공연 동안 매일 선착순 15명에게 2장씩 보내준다.
관객들은 예악당 로비에서 정조와 혜경궁 홍씨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공연시간 11~13일(수~금) 오후 7시 30분, 14ㆍ15일 (토ㆍ일) 오후 5시.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기록한 봉수당진찬도의 헌선도 부분. 신선의 복숭아를 드려 만수무강을 비는 춤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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