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26 개각은 필연적으로 여권 내 권력 지도 및 국정운영 시스템의 변화를 예고한다. 정권 교체에 공이 큰 범 구주류가 권력 핵심에 속속 복귀했다.이는 여권 핵심부가 본격적인 후계구도 관리 및 정권 재창출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핵심포스트에 배치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개각 후의 국정운영 시스템은 권력누수를 최대한 방지하면서 권력축간의 유기적 협력 및 철저한 내부 단속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 여권 권력지도 재편
3ㆍ26 개각에서 권력 중심축의 이동 및 변화에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인사는 신 건 국정원장과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다.
두 사람 모두 청와대와 민주당에 포진하고 있는 권력 실세인 범 동교동계와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또 국민의 정부 출범 과정에서 한몫을 했던 이른바 개국공신이다.
박 수석은 청와대 재입성으로 한광옥 비서실장의 지휘를 받으면서도 범 동교동계인 한 실장 및 남궁진 정무수석과 상호 조정 및 협력 차원의 '트로이카'체제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박 수석 발탁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의 보강이 민주당내 동교동계의 재결속 움직임과 맞물려 있는 점도 주요한 대목. 동교동계의 좌장격인 권노갑 전 최고위원은 이번 개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과정과 결과를 보고 "상당히 만족해 했다"는 전언이다.
동교동계의 다른 한 축인 한화갑 최고위원은 동교동계의 결속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김대중 대통령의 의중, 즉 김심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권 전 최고위원과 한 최고위원은 각각 청와대 한광옥 실장과 전략적 제휴 및 경쟁적 협력관계로 맺어져 있다.
또 동교동계 내부의 연결고리 및 청와대와 당간의 조정 역할은 박 수석, 남궁 수석 등이 맡게 된다. 이 같은 구도는 청와대 중심으로 국정을 짚어 나가면서 '대권'에서 상대적으로 차단돼 있는 범 구주류가 차기 구도를 조정ㆍ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번 개각에서 신주류를 주도하고 있는 김중권 대표를 비롯, 이인제ㆍ김근태 최고위원, 노무현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차기 주자 그룹이 모두 직ㆍ간접적으로 소외되고 견제를 받았다는 점은 이 같은 기류를 분명히 말해준다.
이 최고위원 등은 이미 홀로서기를 시작했고 김 대표는 '격려와 견제'를 동시에 받게 됐다는 점에서 기회이자 도전에 직면했다. 신 건 국정원장은 이 같은 구상을 전방위에서 떠받치면서 지원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국정운영 시스템의 변화
권력 포스트의 재편은 당연히 시스템의 변화로 이어진다. 그 중심축은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과 국정원의 내정에 대한 지원역할 강화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 때에는 국정원이 대북 관계에서 특화된 부분이 있었지만 국내 여론 수렴 및 대안 제시, 정국 안정 기능이 다분히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신 원장 체제의 국정원은 이 같은 부작용을 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한 실장과 박 수석, 당의 한 최고위원 및 권 전 최고위원, 국정원의 신 원장이 언제든 막후 대화를 할 수 있는 우호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들간의 유기적인 연결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는 사실상 권력기관간의 비 상설적 대책회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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