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병을 얻는다. 옛 말투로 하면, 병원은 약도 주고, 병도 주는 곳이다.예를 들어, 병을 고치자고 병원에 갔다가 다른 사람의 병균에 감염될 수가 있다. 의사의 오진, 수술 중의 실수도 생긴다. 약의 부작용은 물론, 처방과 조제 잘못으로 약화(藥禍)를 입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긴 병을 의원성(醫原性ㆍiatrogenic) 질병, 의원병이라 한다. 정의를 하자면 의원병은 대개 '진단, 검사, 치료 등 의료의 전과정에서 일어나는 인신사고'라고 할 수가 있다. 병원 측의 과실 유뮤와는 무관하다.
그런 뜻에서 의원병은 피치 못할 횡액일 수가 있다. 문제는 그 빈도다.
재작년 말 미국 의학원은, 미국 전역에서, 한 해 4만4000~9만8000명이 그런 '인신사고'로 사망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수치는 미국 사람의 주요 사망 원인중 5위,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44000명ㆍ사망원인 8위)의 2배나 된다.
그렇다면, 세계 191개국 중 의료수준 58위(2000년 WHO조사)라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요즘 온 나라가 떠들석한 의료보험 재정파탄 위기라는 것이, 몇몇 '인신사고' 보다 훨씬 심각한 의원병이 아닐까. 그것은 온 국민이 함께 앓는 의원병, 나라를 골병들게 하는 의료재앙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의보 파탄 위기는, 의원병이라기 보다는 정원성(政原性ㆍprytaneogenic) 질병, 곧 정원병이다.
이병의 영어 이름 첫 머리 '프리타네오'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청격인 '프리타네온'에 유래한다. 정치ㆍ행정ㆍ권력에 원인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앙청, 더 좁혀 말해서는 청와대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정원병이 아니라 권원병(權原病) 대원병(台原病)이란 번역도 가능하다.
이런 뜻에서 이번 의보 파동이 정원병이라는 진단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사태를 '국정의 총체적 위기'라고 하는 말 속에 그런 함축이 다 들어 있다.
국민의 73.7%가 이 난리를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중앙일보)나, 54.9%가 내각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는 조사결과(한겨레)도 마찬가지다.
그런만큼, 이제 할 일은 좀 더 정확하게 정원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찾는 과제다. 다음은 이를 위한 몇가지 임상소견이다.
①정원병은 회귀열(回歸熱)과 같은 주기성이 있다. 개혁의 발열기가 되면 한건(件)주의가 판을 친다. 별다른 마련도 없이 교육개혁, 의약분업, 경제 구조조정 따위를 밀어붙이지만, 뒷감당을 못한다.
②정원병은 계절을 탄다. 특히 선거철에 민감하다. 선심정책으로 개혁을 물타기하고, 그 뒤에는 '공약이니까'라는 강박관념에 빠진다.
③정원병은 '속고 속이기'나 같다. 대통령은 이번 의보 난리를 놓고 두 차례나 속았다고 했다. 여당은 복지부에 속았다고 격앙했다. 남는 것은 '네 탓' 뿐이다.
④정원병은 '자전거 타기'를 닮았다. 위 한 사람을 향해서 머리를 조아리며, 국민을 향하여서는 페달을 힘껏 내리 밟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반개혁'이요, '기득권 세력'이다. 토론의 여지가 없다.
⑤정원병은 일종의 원시증(遠視症)이다. 대권(大權), 정권 재창출이라는 먼 꿈을 그릴 뿐, 눈 앞의 개혁 위기는 보지 못한다.
⑥이상을 종합하면, 정원병은 중증의 시스템 기능부전(不全)이다. 시스템 자체, 서툰 개혁을 개혁하기 전에는 근치가 어렵다.
이상 소견에 따른 처방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 처방의 제1호라고 할 이번 개각에 효험을 기대해도 좋을까. 병주고 약주고나마 제대로 할까.
그저 위기 돌파, 민심 수습을 위한 개각은,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랄뿐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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