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현대건설 해법으로 들고 나온 것은 "문제를 질질 끌어봐야 소용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삼일회계법인의 2000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서 자기자본이 완전 잠식된 것으로 나타나 굳이 영화회계법인이 진행중인 자산ㆍ부채 실사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하지만 절차 자체가 복잡한데다 출자전환이 곧 회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어서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 출자전환 왜 하나
그 동안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재연될 때마다 나돌던 출자전환설은 이달초 현대건설측이 4억달러의 해외공사 지급보증 조건으로 채권단에 '출자전환 동의서'를 제출하면서 현실화했다.
실사 결과 부실이 예상보다 큰 것으로 나타나거나 유동성 위기가 다시 발생할 경우 출자전환 및 대주주 감자를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것이 동의서의 골자였다.
하지만 2000회계연도 결산에서 자기자본(2조1,000억원)을 모두 잠식하고도 8,000억원 가량 더 손실이 난 것으로 나타나면서 더 이상 미적거릴 수 없는 처지에 놓이기 됐다.
어차피 실사가 이번 감사보고서를 토대로 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데다 4월말까지 아무런 조치없이 무작정 기다리다가는 시장 불신만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일회계법인측도 이라크 미수금(10조원 상당)의 50%를 손실로 반영하는 등 엄격한 기준을 적용, "이번 기회에 잠재부실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감사 의견은 세계 자금시장에 바로 공시되기 때문에 해외 자금조달 통로도 당장 막힐 수 있다"며 "일단 처리 원칙을 공표한 뒤 실사 결과가 나온 뒤 출자전환을 단행한다면 시장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영화회계법인의 실사도 당초 예정보다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법정관리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등의 방안도 여전히 검토 대상이기는 하지만 건설업종 특성상 신규 수주 등이 막혀 회생이 어렵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희박하다.
◆ 출자전환 방법과 규모
출자전환 과정에서 재무상태를 견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본금에 대한 부분감자가 불가피하다. 정부와 채권단은 현재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감자비율을 달리하는 '차등 감자'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소액주주의 반발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대주주의 부실경영에 대해 책임 추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기홍 금감원 부원장도 이와 관련, "감자를 위해서는 소액주주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완전감자에 소액주주가 동의하겠느냐"고 말했다.
감자와 별도로 경영진에 대한 부실 추궁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출자전환을 하면서 부실 책임이 있는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을 계속 인정하는 것은 특혜 시비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주주인 정몽헌씨의 경우 주주 요구에 의해 경영에 복귀했고 확실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최대한 감안될 전망이다.
하지만 난관도 적지않다. 출자전환은 대개 주식을 소각하고 액면가로 출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현대건설의 경우 소액주주가 많아 시가대로 출자전환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이 경우 출자전환 동의를 해줘야할 18개 채권은행들이 유가증권 평가손을 우려해 반발할 가능성도 크다. 또 신규자금 지원 등 경영정상화 방안에 채권은행들이 얼마나 동참해줄지도 미지수다. 제2금융권이 일제히 자금 회수에 나서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김정곤기자
kimjk@hk.co.kr
■현대 지배구조 재편
정부와 채권단이 현대건설에 대해 출자전환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현대건설에 대한 지배력과 지주회사로서의 성격은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대신 정몽헌 회장이 4.9%의 지분을 갖고 있는 현대상선과 정 회장의 장모 김문희(73)씨가 8.26%의 지분을 가진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현대그룹이 재편되게 됐다.
김씨는 고 김용주 전남방직 회장의 딸로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져 있으며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의 부인이기도 하다.
현대측은 현대건설에 대한 출자전환 얘기가 나돌던 지난해 11월 이미 지분구도를 정비했다. 당시 현대는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주식 15.16%(1,563만주)를 현대엘리베이터에 처분, 현대엘리베이터를 현대상선의 최대주주로 만들었다.
같은 날 현대상선이 현대엘리베이터의 기업어음(CP)을 매입, 현대상선 지분매입에 필요한 자금의 대부분을 현대엘리베이터에 제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대건설측은 "건설이 위기에 처함에 따라 현대상선의 주식을 현대엘리베이터에 '파킹'시켜놓는 의미"라고 말했으나 현대건설에 대한 출자전환이 구체화함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과 함께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갖게 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을 통해 현대중공업과 현대전자, 현대증권, 현대종합상사 등을 간접 지배하게 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정 회장의 장모 김문희씨가 개인 최대주주이며 현대종합상사가 22.13%의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정몽헌 회장의 지배 하에 있는 셈이다.
현대엘리베이터(대표이사 부사장ㆍ최용묵)는 지난해 말 기준 자본금 260억원의 매출 2,600억원의 알짜배기 회사로 알려져 있다.
조재우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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