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극 달력은 김태수(43) 작품의 행진처럼 보인다. 줄줄이 다섯 편이 올라간다. '꽃마차는 달려간다'가 11일 끝난 데 이어 23일 '나비는 천년을 꿈꾼다'가 대학로소극장에서 시작됐고, 4월 '칼 맨', 5월 '효녀 무사 바리', 9월 오페라 '허난설헌'이 잡혀있다.그의 각색한 2월의 악극 '여로'와 하반기 공연 예정으로 의뢰 받은 2편까지 합치면 8편이다. 국내 극작가 중 유일한 진기록일 것이다.
96년 데뷔 이후 20편을 썼다. 20년을 바쳐도 벅찰 분량을 5년 동안 했으니, 죽어라고 써온 셈이다. 그렇게 다작을 해서야 좋은 게 나오겠냐는 일부의 지적에 그는 "중요한 것은 작품 숫자가 아니라 질"이라고 되받아친다.
작가로서 상상력의 샘을 계속 파낼 수 있느냐, 그만한 열정이 있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작품마다 영혼을 바쳐 썼다"는 그의 말은 자부심의 표현처럼 들린다.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땅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등 그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주로 서민의 애환과 한국적 정서를 푸근하게 그린 것들이다.
그래서 김태수 하면 서민극으로 기억되지만, 그는 "서민극, 부유층 연극이 따로 있냐"며 "내가 추구하는 것은 대중적인 시민극"이라고 바로잡는다.
"삶의 가치는 낮은 곳 소외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들의 아픔과 희망을 따뜻한 감성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재미있다. 개그맨 뺨치는 유머 감각으로 관객을 웃기면서 가슴 찡한 묵직함도 던진다. 특히 입에 착 달라붙는 감칠 맛 나는 대사가 일품이다.
자연스런 호흡과 우리말의 감수성을 살려 말 주무르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질펀하게 쏟아내다가 담담하게 착 가라앉히며 완급을 조절, 작품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해체 연극, 이미지 연극이 유행이지만, 그는 말의 힘에 매달리는 언어 연극을 지키고 있다.
극작가로 나서기 전, 그는 잘 나가는 CF 감독이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연출 전공)를 나와 86년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이듬해 희곡집까지 냈지만, 8년간 광고쟁이로 살다연극으로 돌아왔다.
대학 후배인 극단 신화 대표 김영수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 1년 수입이 예전 월급 밖에 안되는 추락을 감행했다. 지금은 아끼면 먹고 살 만해졌다.
작가는 변한다. 정통 사실주의에 머물던 그의 작품도 2~3년 전부터 환상적 사실주의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꽃마차는 달려간다'에선 귀신과 산 사람이 함께 등장하더니, 지금 공연 중인 '나비는 천 년을 꿈꾼다'는 시공을 뛰어넘는 구성과 빛과 소리 등 여러 이미지를 빌어 환상적 요소를 집어넣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넘어 진실에 더 가까이 가자, 관객에게 상상의 여백을 남겨 주자는 시도"라고 설명한다.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해온 그는 "내 안의 샘물을 계속 퍼내다 보니 콸콸 솟던 물이 쫄쫄 흘러나와 득득 바닥 긁는 소리가 들린다"며 "한 달 정도 쉬겠다"고 했다. 샘물이 다시 고인 뒤 그가 다시 내놓을 작품이 기다려진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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