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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연재를 마치며 작가·취재기자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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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연재를 마치며 작가·취재기자 좌담

입력
2001.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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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문학기행'의 발길은 다시 한번 여기서 멈춘다. 99년 11월 16일부터 연재했던 제2차 '문학기행'은 지난 20일자, 61회로 일단 끝났다.80년대에 연재돼 문학 저널리즘에 뚜렷한 이정표를 세웠던 1차 '문학기행'에 이어 10년만에 재개됐던 이 기획은, 문학 현장을 다시 찾아 문학의 향기와 삶의 체취를 전달해왔다.

기행에 동행했던 소설가 이순원(43)씨, 시인 최영철(43)씨와 취재기자의 좌담을 통해 문학기행의 발자취를 정리한다.

■ 하종오기자- 10년 만에 문학기행을 다시 떠나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장안의 지가를 올렸던 한국일보 문학기행을 정리했던 기사를 보면 "현장에는 기쁨보다 가난 소외 억압 시달림만 있었고 그 위에 문학이 건설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는 말이 나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문학과 삶의 현장은 그처럼 한 몸이었습니다. 1990년대 한국문학의 현장은 그 이전과는 뚜렷이 다르다는 우려 때문이었지요. 어쨌든 2차 문학기행이 한 시대 우리문학의 성취를 정리했다는 자부심은 듭니다.

■ 최영철- 문학이 변했기 때문이지요. 1980년대까지 우리문학이 분단, 공동체 등 진폭이 큰 주제를 다뤘다면 1990년대에는 개인적, 일상적 작품들이 주조를 이룹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문학이 너무 빨리 변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문학기행이 작품의 원 공간, 훼손되기 전의 문학적 공간을 답사함으로써 자칫 출판상업주의에 휩쓸려버릴 수 있는 요즘 작가에게는 내적 공간을, 독자에게는 현실적 바깥 공간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작품 이해에 또 다른 감동을 주는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 이순원- 문학기행은 문학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가진 한국일보만이 할 수 있는 기획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은비령' 기행이 보도된 이후 독자들의 전화를 무척 많이 받았습니다.

문단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더 연장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문학기행은 근래 드문 '본격문화의 산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하- 2차 문학기행 목록을 보면 1990년대 한국문학의 특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 이- 문단용어로 이른바 '달라진 이후'의 작품들이지요. 거대담론보다 사소설적 경향이 강하고, 작가들이 내면으로 침잠했습니다.

무대가 모호하거나 작가 자신도 현장을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소설가 김영하씨 편을 읽고 저는 "아, 그 소설에 대학로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2차 문학기행은 이렇게 우리 문학이 변화해온 경향을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 최- 61회 중에서 서울 무대 작품이 18편이 되더군요. 상대적으로 파편화, 사물화 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방을 무대로 한 작품들에는 모천으로 회귀하는, 우리 의식의 원형질이 남아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 이- 경기 고양시를 무대로 한 작품들이 최근에 많다는 것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신도시 개발과 이동을 보여주는 것이죠.

박영한 박상우씨의 작품은 그 이전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사찰을 무대로 한 것도 많았습니다. 사찰은 떠돌이의 고향이지요.

작가가 고향이 없으니, 사찰이 만행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 최- 우리 문학의 현실 대응력 약화로 소설에서 대작 개념이 희박해진다는 걸 느꼈지만 시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문학기행으로 정리하고 보니 우리 문학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작가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 하- 개발연대 이후 한국문학의 중요한 무대였던 기지촌이나 사창가, 혹은 난장 같은 배경들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현장 답사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면 백화점이나 이른바 '베란다 소설'을 낳은 아파트촌이 많은 작품들의 무대가 됐습니다.

■ 이- 우리 사회 내부의 대립구조, 즉 계층 갈등 문제나 이데올로기 문제 등이 큰 문학적 이슈가 되지 못하는 상황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 문학의 공간은 삶을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공간이기보다는, 사람들이 만나고 부딪히고 헤어지는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 최- 제 경우 '일광욕하는 가구'의 무대가 된 부산의 철거민촌이랄 수 있는 물만골은 늘 지나면서도 '비껴서 보고' 시로 쓰여지지 못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곳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치열하게 쓸 수 있었는데도. 자갈치시장만 해도 이제 사라질 운명이지요.

현지의 작가들조차도 그런 처소에 대한 천착이 없습니다. 문학기행을 떠나면서 이 문제를 새삼 환기하게 됐습니다.

■ 이- '은비령'은 사실 제가 소설을 쓰기 전에 가보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은비팔경'이니 하는 것도 창작의 소산이었습니다.

하지만 문학기행을 가 보니 그 옛날 지도에도 없는 군사도로였던 길에 '은비령'이란 이름이 붙어있고 그 이름을 딴 카페 타운이 형성됐더군요.

■ 최- 문학기행의 영향이겠지요(웃음). 사실 부산 물만골만 해도 문학기행 기사가 나간 이후 마을공동체 조직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방지에서도 이곳을 자주 다루었습니다.

■ 이- 저는 한편으로 우려도 컸습니다. 발자크가 빚쟁이들로부터 도망치던 골목길 한 구석까지도 문학유적으로 보존하는 외국의 사례와 우리의 경우 박수근 화백의 유품이라고는 달랑 안경 하나밖에 없다는 예를 비교하지 않더라도, 돈벌이 욕심 때문에 이름만 났다 하면 기념물을 세우고 '드라마 촬영 장소'라고 팻말을 갖다 붙이는 행위는 문화현장 파괴입니다. 시비(詩碑)는 왜 그렇게 많습니까.

■ 최- 동감입니다. 시비 안 세우기 운동이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문화를 제대로 음미하기보다는 액세서리로 만들려는 문화행정가의 시각도 문제입니다. 문학기행은 그런 면에서도 새로운 우리 문화의 지도를 만들려 하는 시도였다고 봅니다.

■ 하- 작가ㆍ작품 선정에서 문학기행 팀의 조율은 있었지만 몇 명의 기자가 연재를 나누어 하다 보니 서술의 일관성이나 스타일 면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 이- 그럼에도 알찬 기획으로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작고한 소설가 김소진 편을 보면서 사람은 가도 작품과 시대, 배경은 이렇게 남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록 짧은 지면에서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세계가 적절히 조망됐습니다.

■ 최- 1차 문학기행 기사가 문어체였다면 2차는 구어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의 독자들에게는 그런 변화가 적절했다고 봅니다.

앞으로 3차, 4차로 문학기행이 이어진다면 가벼워지는 문학을 제 자리로 갖다 놓는다는 의미에서도 더욱 현장 중심으로 기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엄선된(?) 독자와 함께 떠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 하- 기행을 떠나면서 '90년대 문학은 여전히 생성중이고, 내용과 현장을 동시에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점을 의식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문학이 우리 사회, 문화에 가지는 위상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태백산맥에서 일본 오사카까지, 서해의 외딴 섬 가의도에서 묵호항까지 국토를 답사하면서 문학의 진실과 삶의 진실은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굳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행했던 시인, 소설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이- 문학의 향기와 우리 삶의 체취, 작가적 상상력의 훈기와 현장의 비린내가 문학기행에는 함께 했습니다.

최근 문학의 변화를 볼 때 앞으로는 인터넷 웹사이트까지도 '현장'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 곧 북한 문학기행도 떠나야겠지요.

하종오기자

joha@hk.co.kr

●연재 작품과 무대

1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 전남 보성군 벌교읍

2 전경린 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경남 창원시

3 김기택 시 '사무원': 서울 동대문

4 최명희 소설 '혼불': 전북 남원시

5 김소진 소설 '자전거 도둑': 서울 미아리

6 도종환 시 '부드러운 직선': 충북 진천군

7 김영하 소설 '호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서울 대학로

8 신경림 시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충북 충주시

9 이순원 소설 '은비령': 강원 한계령

10 공선옥 소설 '내 생의 알리바이': 전남 곡성군

11 유 하 시 '압구정동에는 비상구가 없다': 서울 압구정동

12 고형렬 산문 '은빛 물고기': 강원 남대천과 오십천

13 박상우 소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서울 신촌

14 함민복 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서울 금호동

15 구효서 소설 '깡통따개가 있는 마을': 충북 대청호

16 김주영 소설 '홍어': 경북 청송군

17 장석남 시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경기 옹진군 덕적도

18 임철우 소설 '봄날': 광주시

19 윤대녕 소설 '상춘곡': 전북 고창군 선운사

20 이창동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 서울 노원구 녹천

21 김명인 시 '바닷가의 장례': 경북 울진군 후포항

22 이청준 소설 '시인의 시간': 서울 여의도 증권사 객장

23 안도현 시 '바닷가 우체국': 전북 군산항과 금강

24 조정래 소설 '아리랑': 전북 김제평야

25 하창수 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강원 화천시

26 유용주 시 '크나큰 침묵': 충남 서산시 간월도

27 정호승 시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경북 영주시 부석사

28 권정생 소설 '몽실 언니': 경북 안동시 일직면

29 최하림 시 '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충북 영동군

30 김인숙 소설 '개교기념일': 경기 고양시

31 이생진 산문 '걸어다니는 물고기': 충남 태안군 가의도

32 김영현 소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원 태백시

33 이승우 소설 '목련공원':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묘원

34 이윤기 소설 '세 동무': 광주직할시 원효사

35 김혜순 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

36 강석경 소설 '내 안의 깊은 계단': 경북 경주시

37 심상대 소설 '묵호를 아는가': 강원 동해시

38 이윤학 시 '먼지의 집': 충남 홍성군

39 공지영 소설 '봉순이 언니':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40 최영철 시 '일광욕하는 가구': 부산 물만골과 자갈치시장

41 박범신 소설 '흰 소가 끄는 수레': 경남 해인사와 전북 무주

42 윤석중 동시 '먼 길': 서울 어린이대공원

43 신경숙 소설 '외딴 방': 서울 구로공단

44 조성기 소설 '라하트 하헤렙': 강원 춘천시 우두동

45 박완서 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 경기 구리시 북한강

46 이성부 시 '야간산행': 서울 북한산

47 김남조 시 '희망학습': 서울 용산구 효창동

48 성석제 소설 '유랑': 서울 구로구 독산동

49 이성복 시 '바다': 대구와 변산반도

50 박영한 소설 '우묵배미' 연작: 경기 남양주시, 고양시

51 이해인 시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서울 대학로

52 허만하 시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부산 다대포

53 박라연 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서울 정릉

54 남진우 시 '타오르는 책': 전북 전주시

55 배수아 소설 '붉은 손 클럽': 경기 고양시

56 하성란 소설 '루빈의 술잔': 서울 삼풍백화점과 인천 어시장

57 은희경 소설 '그것은 꿈이었을까': 경기 일산, 전북 무주

58 최 윤 소설 '회색 눈사람':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59 최인호 소설 '상도': 충남 예산군 추사고택

60 양석일 소설 '피와 뼈': 일본 도쿄와 오사카

61 현 월 소설 '그늘의 집': 일본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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