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독자에세이 / 새벽 출근길이 즐거운 이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독자에세이 / 새벽 출근길이 즐거운 이유

입력
2001.03.28 00:00
0 0

날마다 새벽 5시30분이면 어김없이 나는 출근길에 나선다. 혹여 이웃들의 단잠을 깨울까봐 조심스럽게 아파트 계단을 내려온다. 봄이라지만 아직 새벽 공기는 차고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이 박혀 있다.그 시간에도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목도리를 두르고 새벽기도를 다녀오는 할머니들, 자전거로 우유를 배달하는 젊은 아주머니, 힘차게 뛰어다니는 신문배달원, 가게 앞에 콩나물통과 두부판을 내려놓는 아저씨.

우리들은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사이지만, 어스름이 채 가시기 전에 하루를 시작한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서로 눈인사를 나눈다.

아내는 새벽에 출근하는 나를 안쓰런 눈으로 바라보지만 새벽에 만나는 동지들로 인해서 늘 위안을 받곤 한다.

출근길에 나의 눈을 붙잡는 인상적인 광경이 있다. 미장원과 쌀집, 채소가게, PC방, 세탁소 등이 즐비한 네거리에 이르면 언제나 운동화에 몸뻬바지, 큼직한 점퍼를 입고 머리에는 스카프를 쓴 채 거리를 쓸고 있는 아주머니.

내가 이 곳으로 이사를 온 후 1년동안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거리를 청소한다.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받쳐 들고 쓰레기를 줍고 눈오는 날이면 빗자루로 눈을 치운다.

처음에 나는 며칠 저러다 그만 두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내내 새벽 청소를 하시는 것을 보고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며칠 전에는 그 분께 다가가 "아주머니"라고 불러 보았다. 돌아보는 아주머니 모습이 60대 중반쯤 돼 보였다. 내가 "어떻게 새벽부터 늘 청소를 하세요?"라고 묻자 그냥 "예"라고만 대답했다.

몇마디 더 건네고 싶어 "몇시에 나오세요?"라고 하니 "4시에도 나오고 5시에도 나온다"고 한다. "몇시까지 하시냐?"니까 "아침까지, 때로는 낮까지 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운동 삼아서, 새벽 공기도 마시고 거리가 깨끗해지면 몸도 마음도 좋아져서 그냥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이른 아침에 동네 골목마다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빗자루를 들고 나와 청소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쓰레기만 밖에 내놓으면 으레 미화원들이 가져 가겠거니 하고 나몰라라 해서 미화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어디나 지저분하다.

이제 나도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새벽청소를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내일 새벽에는 보온 통에 따뜻한 차 한잔 담아 그 아주머니에게 전해 주고 싶다.

이종주ㆍ경기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 '독자에세이'에 원고를 보내주신 분께는 문화상품권을 드립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