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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하 15년만에 소설집 '독충'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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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하 15년만에 소설집 '독충'내

입력
2001.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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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제하(64)씨가 15년만에 신작 소설집 '독충'(세계사 발행)을 펴냈다. 1986년에 나왔던 창작집 '용' 이후 쓴 6편의 소설을 묶은 것이다.이 창작집에 실린 단편 '금자의 산'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소설가, 혹은 예술인으로서의 이씨의 삶은 '기이한 탈속'이다.

1954년 고교생으로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로 시작하는 시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로 문명을 떨쳤던 문학소년, 홍익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수 차례 개인전을 연 화가, 1974년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던 소설집 '초식'으로 한국에 본격적인 단행본 출판시대를 연 작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 직접 작사ㆍ작곡한 노래를 기타 치고 불러 CD를 낸 가수이자 영화평론가.. 이런 이씨의 삶의 이력에 어울리는 말로 '예술가'라는 표현 이외에는 다른 것을 찾기가 힘들다.

'독충'을 통해서도 이런 삶에 어울리는 이씨만의 소설 문법의 맛을 만끽하게 된다. 우리가 편히 기대고 있는 합리적인 의식 세계를 어느 틈엔가 흐물하게 지워버리고,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근원적 충동을 그는 마치 독자의 뒷덜미를 잡듯 꺼내놓아 보여준다.

표제작은 50여년 전 초등학교 여선생님이었던 대학 총장의 장례식에서 옛 연인과 만나 벌레 한 마리에 얽힌 선생님의 일화를 기억하는 주인공을 통해 남로당과 전쟁이라는 역사, 그리고 사랑이라는 구원의 주제를 섬뜩하게 드러낸다.

'금자의 산'은 이씨의 역작 '광화사'('열망'으로 개작)를 연상시키는, 일탈의 삶을 살았던 한 기이한 화가의 이야기다.

어느 작품에서나 작가는 특유의 유연하면서도 삶을 일거에 투시하는 듯이 냉소적인 문체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다가, 종국에는 예상치 못한 결말로 그들을 벽과 맞닥뜨리게 한다.

낯익던 세계가 문득 아득하게 낯선 어떤 것으로 변한다. 그의 이러한 기법은 평단에서 '환상적 리얼리즘' 혹은 '광기의 미학'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굳이 이런 수식이 붙지 않아도, 읽으면 그대로 흡인되는 매력이 있다.

"전통적인 것은 사라지고, 다가오고 있는 시대는 그 실체가 선명하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문제가 가장 큰 주제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무의식을 건드려본 것도 그 때문이다." 이씨는 오랜만에 소설집을 묶은 데 대해 "70~80년대는 적이 선명해서 쓰기 편했고, 90년대는 그 시대가 지나간 후유증으로 문학이 '악을 쓰는 데' 10년을 보냈다면, 이제 작가들은 다른 시대에 맞는 눈, 독자적 문학이념을 가져야 한다"며 이번 소설집은 그 모색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그 새로운 이념이 '신 고전주의' 혹은 '신 낭만주의'의 형태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그는 서울 평창동의 아틀리에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다. 오래된 책과 CD와 기타, 작업중인 캔버스들이 어지러이 널린 가운데 강아지 '투투'가 그의 친구다.

요즘은 컴퓨터음악을 공부하는 데 밤을 새고 있다. 이씨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 부르지만 그의 예술적 영감에 교호하려는 후배 문인들은 지금도 때 없이 그의 아틀리에를 찾아 술판이나 포커판을 벌인다.

"최근 젊은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영화에서 빌어온 익숙한 이미지들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고 이씨는 일침을 놓기도 했다.

"문학적 상상력은 이미지 중심의 영화적 상상력과 다른, 사고력의 자극과 확장"이라며 "작가는 사고력에 바탕한 개성을 가져야 살아남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자신의 소설 제목처럼 길에서도 쉬지 않는 나그네의 모습이 느껴진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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