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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의 시 월평 / 김춘수 '어떤 자화상' 허만하 '겨울 동해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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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의 시 월평 / 김춘수 '어떤 자화상' 허만하 '겨울 동해 나들이'

입력
2001.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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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자아성찰…현역시인 면모 담겨한국현대문학의 연륜이 100여 년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현대시에서 어떤 시인을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 역시 그러하다. 물론 이미 공식적인 주류들의 문학사는 존재해왔다. 주류의 문학사 속에 등장하는 시인의 목록은 현대문학에 관한 지배적인 이념과 관점들을 반영한다.

그런데 기억이란 늘 그렇듯이 '지금의 기억'이어서 어떤 현재적인 욕구의 개입 없이 과거를 호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기억이 늘 새롭게 재구성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새로운 기억의 지도를 만드는 일에 지금 착수해야 할 것이다.

김춘수와 허만하는 해방 이후의 현대시를 말할 때 주류의 시단에 편입되기는 어려운 시인들이다. 해방 직후 등단한 김춘수의 경우는 미학적 방법론이 후배 시인들에게 대단히 심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탈현실적인 시적 태도로 말미암아 충분한 비평적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의미의 질서를 배반하는 시적 언어에 대한 그의 집요한 탐구는 우리 현대시의 중요한 미학적 상징의 하나였다.

허만하의 경우는 1957년에 등단한 이후 문학적 공백기를 거쳤다. 그가 최근 다시 활발한 시작 활동을 전개하면서 출간한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는 그가 잊혀진 시인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살아있는 감각을 보여준 바 있다.

최근에 계간지에 시를 발표한 두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이들이 기억되어야 할 시인이기를 넘어서 지금 여기서 활동 중인 시인이라는 것을 여실하게 알 수 있다.

김춘수의 '어떤 자화상'('문학과 사회' 봄호)은 역사의 변방에서 사라진 한 인물을 기억하려 한다.

'겨울이 다 가고 새 봄에 春泥(춘니)가 오면/ 울고 싶도록 그는 발이 젖는다./ 역사가 어디 있나,/ 정몽주는 거기 있는데/ 송화강 건너간 그날의 그는/ 왜 아직도 소식이 없나,/ 너무 오래됐구나'

그런데 왜 '정몽주'인가? 김춘수의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현실의 피해자이다.

정치와 역사에 패배한 인물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미 '처용'이라는 인물에 대한 깊은 시적 의미부여에서 드러난 바 있다. 왜 '자화상'인가라는 의문이 아직 남아있다.

김춘수의 시적 자아는 현실에서 훼손당한 인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다. 시는 현실의 한 중심에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배면에서 상처받은 자의 목소리를 통해 새어나오는 어떤 것이다.

아마도 어떤 이는 이것이 김춘수 식의 정치혐오 혹은 현실기피의 심리적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한 시인이 그토록 자신의 시에서 역사적 현실을 지워나가려 했는가 하는 것이며, 그것이 어떤 미학적 형식으로 귀결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허만하의 '겨울 동해 나들이'('문학동네' 봄호)는 겨울 바다에 대한 시적 소묘를 담고 있다.

시인은 매우 감각적인 비유들로 겨울 바다의 풍경을 묘사해 낸다. '길이 굽이칠 때마다 입술이 시퍼런 겨울 바다는 서커스 마지막 장면을 인사하는 코끼리 껍질처럼 쭈그러져 있었다.'

마치 정지용의 시적 묘사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청신한 감각이 이 시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시인은 그 풍경 안에서 '누군가 나를 닮은 겨울 나그네'를 발견한다. 그것은 우주적 기원의 풍경 안에 진입해 들어가는 자기성찰적 정신의 그림자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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