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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개각 / 화제의 인물

입력
2001.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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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복 복지노동수석▼'30여년 머물렀던 노동자 곁에서 대통령 곁으로.'

이태복(李泰馥ㆍ51) 신임 복지노동수석은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겠다'는 사명감 속에서 모진 고문과 오랜 투옥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한때 공권력으로부터 사형을 구형받았던 그가 이제 '최고 권부(權府)'인 청와대로 들어섰다.

이 수석은 성동고 재학시절 흥사단 아카데미에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에 눈을 떴다. 1976년 대학을 졸업한 뒤 첫 취업은 용산시장 지게꾼. 전국에서 노동자 생활을 계속하면서 광민사를 설립, 출판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출간된 '한국노동문제의 구조' '노동의 역사' 등 사회과학 서적들은 한때 낯익었던 대학가의 스터디셀러들이다.

하지만 3년여의 현장운동은 "작은 운동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찾을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남겼다. 학생운동출신과 합류한 그는 70년대말 전국민주노동자연맹, 80년대초 전국민주학생연맹을 결성, 노학연대와 적극투쟁론을 펴며 5공화국의 강권에 정면으로 맞섰다.

당시 이 수석에게 핍박은 친구와도 같았다. 81년에는 전민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에게 칠성판 위에 뉘어진채 관절뽑기 등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사형이 구형됐다가 재판부로부터 무기형을 언도 받았다.

국제 앰네스티 본부로부터 '세계의 양심수'로 지정받은 끝에 석방된 이 수석은 89년 주간노동자신문을 창간하고 99년에는 노동일보를 창간했다. 그는 투쟁 일변도의 방식을 바꿔 비정규직 보호 문제를 제기하는 등 정부의 정책에 노동계 주장을 반영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또 무의탁 노인 지원단체인 '인간의 대지' 대표를 맡으면서 사회복지분야로도 관심의 폭을 넓혀갔다.

"어디에 가도 나는 변함이 없습니다. 청와대에서 노동자를 위해 일했다는 평가를 받고 물러나겠습니다." 파란 많은 삶을 살아온 이 수석이 생애 최대의 전기를 맞으며 되풀이한 다짐이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김영환 과기부장관▼

시국사건 빵잡이(기결수)에서 40대 장관까지.

26일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임명된 민주당 김영환(金榮煥ㆍ46) 의원의 인생역정은 한편의 드라마이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한 음식점 주방장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 장관은 넉넉지 못한 집안형편 탓에 어렵게 고교를 마치고 1973년 연세대 치대에 합격했다. 치대를 택한 것은 가난의 멍에를 벗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러나 당시는 '유신(維新)'의 공포가 사회를 짓누르던 시절. 학생운동에 투신한 그는 1977년 학내시위를 주동,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돼 2년여를 감옥에서 보냈다.

석방 후 또 수배되자 그는 노동운동을 택했다. '신한일전기'에 위장취업해 노조를 결성했다가 해고를 당하는 등 5년간 노동현장을 전전했다. 김 장관은 "감옥과 노동현장에서 인생과 인간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당시 그가 딴 자격증만도 전기 기사 1급, 소방설비 1급 등 6개.

부인 전은주(全銀珠ㆍ43)씨를 만난 것도 이즈음. 숙명여대 운동권 후배로 감옥살이를 한 전씨와 연세대 앞에서 '알 서림'을 함께 운영하면서 '동지'로 부부연을 맺었다.

86년 그는 '문학의 시대' 등을 통해 문단에 데뷔, '시인'으로 변신했고 2권의 시집을 냈다. 2년 뒤 15년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삼각지에 '믿음치과'를 개업했다.

수완을 발휘해 서울 강남역 부근에 대형 치과를 낼 만큼 성공했고 큰 돈을 벌었다.

재야운동도 계속됐다.

그는 치과에서 번 돈으로 과학도인 동생과 함께 1991년 첨단전기전자 회사인 '다림시스템'을 창업, 3년간 '벤처 인생'을 산 뒤 동생에게 물려주고 정치권에 투신했다. 그는 15대 때 국민회의 후보로 안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으며 국회 과기정통위에서 의욕적인 의정활동으로 좋은 평판을 얻었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김 장관은 사석에서 "거의 5년 주기로 인생이 변했는데 올해가 정치생활 5년째"라며 "또 무슨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지."라고 되뇌이곤 했다. 김 장관은 "젊은 시절의 파란 많은 인생을 거울 삼아 땀냄새가 물씬 나는 장관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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