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동서양 무사의 대결은 검투사 '글래디에이터'(감독 리틀리 스콧)의 승리로 끝났다.26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슈라인 오라토리움에서 희극배우 스티브 마틴의 사회로 열린 제7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글래디에이터'는 작품상, 남우주연상(러셀 크로), 의상상, 음향상, 시각효과상을 차지하며 최다 수상작을 기록했다.
10개 부분 후보작으로 가장 강력한 경쟁작이었던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은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4개 부문(미술상, 촬영상, 음악상) 수상에 그쳤다.
'와호장룡'은 아카데미 사상 외국어영화로서 작품상과 외국어영화상 수상을 동시에 노렸지만, 지난해 '인생은 아름다워' 의 실패에 이어 이방인에 대한 아카데미의 높은 벽을 실감하게 했다.
2개의 작품을 동시에 작품상, 감독상 후보에 올린 신세대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가 감독상을 받았고, 그의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3번째 도전한 줄리아 로버츠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 주었다.
그의 영화 '트래픽'은 감독상 외에도 베니치오 델 토로가 골든 글로브에 이어 남우조연상을 차지하는 등 4개 부분을 수상했다.
큰 이변이라면 남우주연상. 당초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가 3번째 수상 가능성을 점쳤으나 '글래디에이터' 의 러셀 크로에게 돌아갔다.
'폴록'의 마르시아 개이 하든이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 5개 부문 후보에 오른 '초콜렛'은 단 한 개의 상도 타지 못한 것도 이변이라면 이변. 올해 아카데미는 예년과 달리 뚜렷한 대작이 없는 가운데 '글래디에이터' '와호장룡' '트래픽'의 나눠먹기 식이 됐다.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남우주연상 - 러셀 크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러셀 크로(37)의 '글래디에이터'가 개봉했을 때 미 언론은 "연기를 하는 액션배우가 나왔다"며 극찬했다.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워제네거, 멜 깁슨 등 이전의 영웅이 한결같이 '근육' 에 의존했다면 러셀 크로는 지적인 면모와 근육을 함께 갖춰 새로운 미국 영웅상으로 평가받는다.
친근한 이미지의 톰 행크스에게 골든 글로브를 빼앗겼던 그는 이번에 승자가 됐다.
뉴질랜드 태생으로 호주에서 연극배우로 출발한 그는 할리우드로 건너가 '퀵 앤 데드' '인사이더' 'LA 컨피덴셜' 등으로 이름을 알렸으나, 가족과 권력 모든 것을 잃고 검투사로 추락한 로마 장군 막시무스의 연기로 미국 최고의 인기배우가 됐다.
'프루프 오브 라이프'의 상대역 멕 라이언과는 염문을 뿌리다 지난해말 결별했다. 수상 소감 역시 멋졌다. "난 늘 변두리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 기억에서 영감을 얻는다. 혜택받지 못하는 사람, 믿을 것이라고는 용기 뿐인 사람에게 희망이 되길."
■여우주연상 - 줄리아 로버츠
이번에 줄리아 로버츠(33)가 실패할 확률은 1%도 안됐다. '귀여운 여인'으로 후보에 올랐다 수상하지 못한 것이 벌써 10년전의 일이다, 여배우 중에선 유일하게 2,000만 달러(260억원)의 출연료를 받지만 언제나 "헤픈 여자 같다"는 악평에 시달려야 했다.
'귀여운 여인'이후 '후크' '적과의 동침' '펠리칸 브리프' 등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스캔들, 흥행 부진으로 '지는 해' 대접을 받았다.
드라마로 실패했지만 로맨틱 코미디로 재기했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노팅힐'로 잇달아 성공을 거둔 후 연기파 배우의 대접을 받게 됐다.
천박한 옷차림, 속사포 같은 말투, 그러나 사회정의를 실현한 '미국 여성의 꿈' 에린 브로코비치 역으로 그는 올 골든글로브, 배우조합상에 이어 오스카상까지 거머쥐게 됐다. "이 세상 전부를 사랑해요.
너무 너무 기뻐요"라며 흥분과 감격이 가득한 수상 소감과 커다란 웃음을 쏟아냈다. 수상소감을 말하는 그는 '감동적인 오스카' 드라마 속 여주인공 같았다.
박은주 기자
jupe@hk.co.kr
■감독상 소더버그
'에린 브로코비치' 에서 함께 작업했고 그 영화로 이번에 여우주연상을 탄 줄리아 로버츠는 "스티븐 소더버그는 천재다.
그가 원한다면 그의 비서라도 될 수 있다"고 했다. 13세 때부터 영화촬영을 시작해 열일곱살 때 이미 단편영화를 찍은 올해 38세의 이 신세대 감독은 '할리우드의 미래' 가 되기에 충분하다.
장편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예술성을, '리틀 킹'으로 실험성을 인정받은 그는 재능을 바탕으로 할리우드 대중영화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 첫 작품이랄 수 있는 '에린 브로코비치' 와 후속작인 '트래픽'으로 그는 아카데미를 점령했다. '에린 브로코비치' 의 미국식 정의와 페미니즘, '트래픽'의 마약에 찌든 미국 현실의 깊숙하고 재치있는 통찰은 그가 독창적인 예술영화 감독이면서도 대중적 정서를 꿰뚫어볼 줄 아는 감독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감독상을 받고 그는 "예술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누구든 자신의 창의성 발휘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것이 책이든 영화든 그림이든 춤이든 음악이든 관계없다"고 말했다. /이대현기자
제73회 아카데미 영화제 영광의 수상자들. 감독상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남우주연상의 러셀 크로, 여우주연상의 줄리아 로버츠.
/로스앤젤레스 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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