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대선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등 환경 공약을 내걸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근 에너지 위기를 빌미로 이를 번복, 국내외에서 거센 비난과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부시 대통령은 지난 14일 공화당 상원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최근 서부지역에서 치솟는 에너지 비용을 이유로 들어 화력발전소의 이산화탄소 방출을 규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의무적으로 줄일 경우 발전소들이 석탄보다는 천연가스를 많이 사용할 수 밖에 없어 전기요금이 올라가고, 최근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전력난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이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는 세계 주요 국가들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수년동안 추진해오고 있는 주요 환경 정책으로 부시 대통령도 지난 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어 환경 보호 단체들과 야당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특히 유럽의 분노를 사고 있다.
23~24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회담을 가진 유럽연합(EU) 정상들은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선진공업국 지도자들이 특별한 비전과 정치적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모 합의를 위한 회담을 조속히 열 것을 촉구했다.
이 서한은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22일 워싱턴 주재 EU 대사들과 가진 회의에서 1997년 교토(京都) 의정서에 따른 이산화탄소 감축 과정은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통보한데 따른 것이다.
교토 의정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2년까지 1990년도 수준에 비해 5.2% 감축하자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그 이행방안을 둘러싸고 미국과 EU가 여러 차례 절충을 벌였으나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서방 선진 7개국(G7)과 러시아는 7월 본에서 환경장관 회담을 갖고 다시 한번 논의할 예정이다.
프랑스 등 일부 EU 국가들은 이번 서한 보다 더욱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자칫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 구축과 유럽의 신속대응군 창설 등에 이어 이 사안이 미국과 유럽의 불화 요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가 다른 환경 문제들도 과거에 비해 후퇴하고 있다면서 '환경전쟁'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또 환경보호 단체들도 "부시 대통령에게 기만 당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비난을 받고 있는 문제들은 음용수에 함유되는 비소의 농도 기준을 강화하려는 법안의 통과 지연, 유전개발을 위한 북극지대의 야생동물 보호구역 개방 구상, 산림보호 정책의 후퇴 등이다. 민주당과 환경 보호 단체들은 부시의 대선 공약 번복이 에너지 비용 때문이라는 주장은 허구이며, 공화당과 부시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한 에너지산업 등 업계의 이익을 반영한 조치라고 비난하고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외교정책도 갈등 조짐
대북 강경 입장을 취하고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와 대조적으로 유럽연합(EU)이 최근 남북한에 중재 대표단을 파견키로 한 것은 외교정책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갈등이 표면화된 사건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러시아 외교관 추방, 한반도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유보등 미 행정부의 잇단 대외 강경책에 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며 "EU의 남북한 대표단 파견은 유럽의 외교 정책이 미행정부와 별개로 독자적으로 진행 될것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을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로 비유하고 있는 독일 정부는 김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에 강한 지지를 보이고 있으며, 이 같은 유럽의 입장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이번 주 워싱턴을 방문 할때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될 것이 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와 관련, 독일 외교 관계자들은 어떤 정권이든 대화를 대체할 다른 방법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EU대표단의 남북한 파견은 EU가 이 문제에 대해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독일 언론들이 전했다.
이 신문은 또 대북 강경책의 수위를 놓고 딕 체니 부통령과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간에 이견이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EU는 판단하고 있다며 체니 부통령을 정점으로 한 보수 강경론자들 보다 파월 국무부 장관에 대해 EU가 보다 우호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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