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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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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안중근

입력
2001.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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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26일 안중근(安重根)이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사형 당했다. 향년 31세. 안중근은 그 전해인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일본 관헌에게 넘겨진 그는 이듬해 2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일본의 한국 병합이 법적으로 완료된 것은 1910년 8월이지만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 이후 한국은 실질적으로 일본의 지배 아래 있었다. 안중근이 살해한 일본인 곧 초대 통감 이토는, 비록 그 자리에서 막 물러나기는 했지만, 한반도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였다.

그러니까 안의사의 거사일인 10월26일은 70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의 최고 권력자가 살해된 날이다. 1979년 10월26일에도 한국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박정희가 총탄에 맞아 죽었다.

이토에게 총탄을 날린 사람은 그가 강제로 병합하려 한 이웃나라의 젊은이였고, 박정희에게 총탄을 날린 사람은 그가 제손으로 임명한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이토는 백주의 공무 수행 중에 죽었지만, 박정희는 어스름이 깔린 뒤 음습한 연회석에서 죽었다.

안중근의 거사가 한일합방을 막지는 못했지만 두 나라의 합방에 한국인들이 반대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듯, 김재규의 거사도 곧바로 민주화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독재자에게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역사의 교훈으로 남겼다.

대한의군 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 안중근처럼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도 형장에서 삶을 마쳤지만, 안중근이 옥중에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집필할 정도로 비교적 자유스러웠던 데 견주어 김재규는 참혹한 고문과 악선전을 통한 인격 살해 끝에 육체적 삶을 마쳤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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