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공포가 미처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유린하고 있다. 유럽산하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그 어느 나라도 구제역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실제로 영국에서 시작된 구제역은 유럽은 물론 중동과 남미에서도 발생하더니 이젠 드디어 몽고에까지 나타났다. 때맞춰 극성을 부리는 황사가 구제역 바이러스를 실어오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1969년 당시 미국 공중위생국 장관은 "전염병의 시대는 이제 그 막을 내렸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이 얼마나 경솔한 판단이었던가.
20세기 의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히는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인류는 세균에 의한 감염으로부터 해방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세균과 벌인 우리의 전쟁은 그리 쉽사리 끝나주지 않았다.
상처부위의 감염을 유발하는 포도상구균의 경우만 보더라도 1941년에는 그 계통의 거의 모든 세균들이 페니실린에 의해 쉽게 제거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3년 만인 1944년에는 몇몇 균주들이 이미 페니실린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포도상구균의 거의 전부가 페니실린에 상당한 저항성을 보인다.
1950년대에 메씨실린이라는 인공 페니실린이 개발되어 한동안 효과가 있었으나 곧바로 세균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임질은 페니실린으로 간단히 치료할 수 있었다. 저항성을 보이는 균주들도 앰피실린으로 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75% 이상의 임질균들은 앰피실린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드디어 몇 년 전 세계 보건의 날을 맞아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 시대가 다시 우리 곁에 찾아오고 있음을 시인했다.
거의 완벽하게 퇴치했다고 믿었던 전염병들이 세계 각처에서 창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백신이 모자라는 소동까지 빚고 있다. 에이즈나 에볼라 같이 예전에는 없었거나 그리 대수롭지 않았던 전염병들도 새롭게 등장하여 인류의 안녕을 위협하고 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간이 점점 처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 비해 세대가 워낙 짧기 때문에 훨씬 빨리 새로운 무기를 만들 수 있다.
생물은 그 어느 누구도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늘 다른 생물들과 함께 진화한다. 따라서 다른 생물들, 그 중에서도 특히 병원균과의 경주에서 뒤지면 결국 멸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개념을 잘 설명하는 학설로 '붉은여왕설'이라는 이론이 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보면 거울 속의 나라에서 앨리스가 붉은 여왕과 손을 잡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숨을 헐떡이며 아무리 달려도 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앨리스가 말한다. "우리 동네에선 이렇게 달리면 지금쯤 어딘가에 도착해야 하는데요." 그러자 붉은 여왕은"퍽 느린 동네로군.
여기선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제자리에나마 서있을 수 있단다"라고 대답한다. 진화란 바로 이렇듯 붉은 여왕의 손을 잡고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병원균들이 또다시 우리보다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했다.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그걸 모르고 우리는 농사를 짓는답시고 한 곳에 한 종류의 농작물만 기른다. 해충들에겐 더할 수 없이 신나는 일이다.
구제역이나 광우병이 일단 발발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까닭도 우리가 가축들을 모두 한 곳에 모아놓고 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집약농업을 포기하고 소규모 유기농법을 도입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바로 유전적 다양성의 고갈이다. 더 좋은 품종을 얻기 위해 우리 인류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열심히 가축과 농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줄여왔다.
좋은 유전자만 남기기 위해서. 유전적으로 다양한 집단은 병원균의 공격을 받아도 몇몇 약한 개체들만 희생될 뿐이다. 광우병이나 구제역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이런 전염성 질병이 몰고 올 재앙은 점점 더 빈번해지고 그 규모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유전자과학이 발달하여 곧 인간의 유전자도 마음대로 치환하고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우리의 유전적 다양성도 비슷한 비극의 길을 걸을 것이다.
좋은 유전자가 있다는데 바꾸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의 고유한 유전자를 남들이 다 좋다는 유전자로 바꾸기 시작하면 우리 스스로를 가축이나 농작물처럼 만드는 셈이다.
모두가 똑같은 가방을 메야 하고, 모두가 똑같은 구두를 신어야 하고, 모두가 똑같은 춤을 춰야 하는 우리 나라는 특별히 큰 재앙을 맞이할 것 같아 걱정이다.
복제인간 몇 명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유전자 종교를 신봉하는 인간교인들이 스스로 자연 앞에 무릎을 꿇을 일이 더 무섭다. 유전자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다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찰스 다윈을 새삼 소개한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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