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에서 '일본식 불황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아직은 '양성반응' 수준이지만, 일단 발병할 경우 치사율은 일본보다 훨씬 높을 수 밖에 없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에서 10년만에 세계경제위기의 진원지로 전락해버린 일본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나라 곳간을 지켜라
재정은 경기조절의 마지막 보루. 그러나 위기가 코앞에 두고도 일본의 재정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30년간의 누적적자로 나라 곳간이 빚더미로 가득 차 '불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135.3%(660조엔)로, 서방선진국(G7) 중 최고다.
실물경기를 띄우려면, 뉴딜(New Deal)같은 재정지출 확대나 부시행정부식의 감세(減稅)정책이라도 써야하지만, 바닥난 일본재정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 기준 119조7,000억원. GDP대비 23.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69.5%)를 훨씬 밑돈다. 하지만 환란이후 적자재정 편성으로 국가채무가 4년만에 2배로 증가, 10년만에 2배가 된 일본보다 속도는 훨씬 빠르다.
여기에 104조원 공적자금의 대부분이 재정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고, 건강보험(2조~4조원) 인천공항(1조5,000억원) 국민기초생활법시행(연 3조원), 천문학적 통일비용까지 쓸 곳은 너무 많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위기때 재정악화는 곧 정부의 무장해제를 뜻한다"며 "일본식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재정건전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 부실을 털어라
일본은 10년간 90조엔의 부실채권을 털어냈고, 이 과정에서 16개 은행이 파산했다. 그러나 주가 및 신용등급 하락을 우려한 은행들의 부실노출 기피와 정부의 미온적 공적자금 투입으로 64조엔의 부실이 남아 있고, 은행부실심화→대출경색→기업도산→시장불신심화로 연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 상반기까지 159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적자금 살포로 98년3월 118조원이었던 부실채권이 작년 말 64조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현대'로 대표되는 부실은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부실기업정리를 포함한 구조조정을 원칙대로 추진하지 않는 한 시장불신 제거와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경기대응 제때하라
일본경제는 돈을 풀어, 이자율을 제로로 떨어뜨려도 소비가 늘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있다. 과다부실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에 개인들, 특히 연금생활자들이 돈을 모으기만 하고 쓰지 않기 때문이다.
저명한 미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MIT대)는 이에 대해 "유동성 함정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중앙은행이 보다 신속하게 금리를 인하했어야 했다"며 일본당국의 경기대응 실기(失機)가 위기를 부추겼음을 지적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무엇보다 불확실성의 진원지인 부실정리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금리인하 등 경기대책도 보다 선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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