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낮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의 서울 청운동 빈소를 찾은 강종훈 북한 아태평화위 서기장은 방명록에 붓으로 "정주영 선생의 서거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고 적어 내려갔다.그러던 중 옆에서 붓끝의 움직임을 한동안 응시하던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 울먹임은 송호경 아태위원회 부위원장이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을 쓸때까지도 계속됐다.
송부위원장이나 강서기장은 정 회장이 너무도 잘 아는 인물들. 금강산 관광사업 추진과정에서 정 회장이 정 전명예회장과 함께 수차례 방북해 접촉한 사람들이다.
형인 정몽구(鄭夢九) 현대차 회장이나 동생인 정몽준(鄭夢準) 현대중공업 고문 등과는 달리 몽헌 회장이 두 사람의 조문을 받으며 남다른 감회에 젖은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송 부위원장은 빈소를 떠나면서 "김정일 장군께서 유가족들이 힘을 합해 사업을 계속해달라고 전했다"고 밝혔다.
현대의 앞날은 물론, 정몽헌 회장 혼자 꾸려가고있는 금강산사업도 걱정이 되니 형제들이 도와달라는 뜻으로 들렸다.
실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대북사업을 맡을 때만 해도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의 행복한 '후계자'였지만 지금 그가 맡은 현대건설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있고 아버지의 숙원사업이던 금강산사업 마저 자금난으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정 회장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것은 자신과 북한 밖에 없다. 정 전 명예회장이 25일 선영에 안치된 이후 정씨 형제들은 이내 각자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현대 회생과 금강산 사업의 숨통을 트기 위해선 정 회장 본인의 노력과 함께 고인의 덕을 톡톡히 봤던 북한이 관광사업대가 삭감 등 적절한 '보은'을 해야한다는 얘기다. 조문단도 고맙지만 정 회장으로선 '북한의 선물'이 더욱 절실하다.
조재우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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