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가 넘은 사람들은 '저축강조기간'이라고 쓰여있는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녔던 초등학교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만성적인 자금부족에 시달렸던 당시에는 저축이 최고의 선(善)이었고, 이를 널리 강조하고 알리기 위해 '강제적'으로 리본을 착용케 했었다.
일주일 또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주로 동전인 어린이들의 코 묻은 돈까지 학교에 가져와 저금을 하게 했다. 저축 금액과는 상관이 없었다. 은행원이 교실에 까지 '출장'나와 일을 처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10원짜리 동전이 가득한 돼지저금통을 가지고 은행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기는 커녕 왜 귀찮게 구느냐고 핀잔을 받게 된 세상이다.
게다가 저금을 해도 이자를 주지 않는다. 어린이 고객을 위해 창구 앞에 놓여 있던 발 받침대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됐다.
돼지저금통을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에 비해 수익이 형편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은행원의 시간당 인건비, 은행 전산망을 가동시키는데 드는 돈 등을 따진 결과라는 것이다.
■예금액이 적거나, 신용도가 낮거나, 거래빈도가 적은 '3 불(不)' 고객들은 이런 대접에 만족해야 할 때가 왔다.
얼마 후면 은행에 대해 돈을 안심하고 맡아줬다며 수수료를 내야 할지도 모른다. 은행의 생존을 위해서는 수익을 올려야 하고 그러려면 우선 그 동안 '서비스 차원'에서 손해보면서 해 왔던 업무를 유료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반면 돈이 많거나 신용도가 높은 사람들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은행에 많은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1만원을 예금하려는 '작은 손'하고 1억원을 들고 온 '큰 손'하고 다른 대접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 차이가 심해지고 노골적ㆍ공개적이 된다.
돈 없는 사람은 어디 가나 설움을 당하는 법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은행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지만, 어쩐지 씁쓸한 감이 든다. 은행에 치명적인 부실을 안긴 것은 갑부들이었고, 이 만큼 키운 것은 일반 서민들이 아니었던가.
/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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