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과 이런 저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가장 당황스러워지는 순간은 "한국 놈은 어쩔 수가 없어" 또는 "한국 사람들 민족성 때문에" 라는 결론이나 자기진단을 대했을 때이다.이야기하고 있는 문제의 범위를 떠난 갑작스러운 논리의 비약일 경우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깊이 배어 있는 자기혐오에 더 당황하곤 한다.
마치 안 좋은 일과 전라도 사람이라는 변수가 겹쳐지는 순간 "역시 전라도였구나" "전라도 사람은 어쩔 수가 없어" 라고 단정지어 버리면서 생각을 멈추는 것과 비슷하게, 단위만을 확장해서 자기혐오적인 논리로 끝을 맺는 경우를 꽤나 자주 본다.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과는 궤도와 결과가 많이 다른 이런 자기 혐오의 문화는 일본의 식민지와 미군정을 겪고 비교 우위의 미국을 늘 의식하면서 살아온 약소 국민의 어쩔 수 없는 심리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늘 선진국 운운하면서 항상 한국인들이 만든 문화나 질서는 열등한 것이라는 심리를 부추겨온, 학문하는 이들이나 언론인들의 책임도 작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어느 신문은 '2001 한국사회는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들다' 라는 특집의 제목 아래 의존 장애, 성형수술 집착, 집단 히스테리, 도덕 무력증 등의 증상을 열거하면서 '한국은 정신적으로 병든 (미쳐있다는 의미가 강한)사회'라는 중대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이런 증상들이 한국에만 특이하게 존재하며 유달리 최근에만 두드러졌고, 성별, 계층, 연령, 지역차를 넘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볼만한 충분한 조사와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과감한 진단을 내렸다.
대안을 같이 찾기보다는 결과적으로 한국 사람들 서로에 대한 혐오감과 불신감만 불러일으킬 만한 이런 기사의 필요성에 일단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몇 가지 문화현상만으로 한국인 전체의 정신에 대한 점수를 매기려 하는 이런 겁 없는 태도가 더 병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사실 우리가 한국에서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현상이나 문제들 대부분은 다른 사회에도 비슷하거나 형태만 조금 바뀐 모습으로 존재한다.
질서의식의 부재나 한 극으로 치닫는 경쟁의식도 사실 인구 밀도가 높고 적은 자산을 많은 이들이 나누어 가져야 하는 나라들에서 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도 뉴욕시나 보스톤시 같이 인구밀도가 조금만 높아지면 거의 모든 이들이 길거리 횡단보도 신호등을 완전히 무시하며 길을 건너고 난폭 운전, 새치기 운전도 비일비재하다.
혐오스러운 면을 들추자면 끝도 없는 사회가 또한 미국이다. 다분히 중독적이고 목숨을 건 성형수술, 살빼기 수술이나 행위는 말한 것도 없고, 폭력에 대한 맹신적 문화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나라이다.
물건을 살 때 또 뒤통수 맞듯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긴장감이 늘 들만큼 온갖 형태의 사기적인 판매술이 극도로 발달한 나라이기도 하다.
아마도 다른 점은 고질적이고 혐오스러운 병폐들을 평가할 때 '미국놈은 어쩔 수 없어'식의 자기비하나 미국은 이런 사회라고 단정짓는 문화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무수하게 발생하는 중고등학생의 총기난사사건과 이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다분히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대응을 보면서도 그렇다.
미국의 도덕성과 미국교육, 정치기능의 끝을 보는 듯한 진단이 나올만 한데도 그런 식의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세계 일등국민이라는 근거 없는 자부심 아래 아전인수격의 미화를 하곤 해서 역겨울 때가 많다.
이런 민족 단위의 우월감 혹은 열등감의 내면화는 불평등하게 얽히고 설키면서 진행되어온 그 동안의 세계화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화 현상일 수 있다.
다만 이런 구조악을 자꾸 부추기면서 회복이 힘든 자기혐오 문화를 심화시키는 일은 말았으면 좋겠다.
권인숙ㆍ미 사우스 플로리다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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