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가 1958년 3월24일 미합중국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이 날부터 대중 음악의 황제가 아니라 미합중국 군번 53310761의 사병일 뿐이었다.엘비스의 군 입대는 그의 야한 옷차림과 선정적인 몸놀림에 눈살을 찌푸리던 미국의 보수층에게 그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엘비스는 두 해 동안의 군 복무 기간동안 단 한 번의 리코딩을 했을 뿐 가수 활동을 완전히 중지했다. 그런데도 그의 곡들은 히트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엘비스는 서독 주둔 미군으로서 프리드부르크에서 근무했는데, 그 도시의 팬들은 엘비스가 그 곳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엘비스는 노래를 하지 않던 그 두 해 동안에도 늘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셈이다. 그는 군 복무 기간동안 사병으로서는 파격적인 특전을 누렸다.
그는 내무반을 떠나서 할아버지ㆍ아버지와 함께 온천도시 바트나우하임의 빌라에서 거주했다. 엘비스의 어머니는 아들이 서독에서 복무하던 중에 사망했다.
'팝의 제왕''로큰롤의 황제'등으로 불리며 19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세계의 대중 가요 팬들을 매료시킨 엘비스는 미시시피주 이스트튜펠로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1956년 '하트브레이크 호텔'이 크게 히트해 젊은 세대의 우상이 된 그는 컨트리와 리듬 앤드 블루스를 결합시키며 미국 대중 음악의 새로운 주류를 창출했다.
'러브 미 텐더''버닝 러브 ''아 유 론섬 투나잇' '에니싱 댓츠 파트 어브 유'(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은 이 노래의 번안이다) 같은 히트곡들은 우리 기성 세대의 귀에도 익숙하다.
엘비스는 42세로 멤피스에서 죽었다. 심장병이 사인이었지만, 지나친 약물 복용으로 그의 몸은 이미 엉망이 된 상태였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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