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남녀 탁구선수들이 10년만에 한 팀이 돼 다음달 23일부터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처음으로 단일팀을 이뤘던 1991년 일본 지바 대회에서 여자팀이 최강 중국을 꺾고 우승했던 감격의 기억은 '영광 재현'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높인다. 10년전 우승의 주역인 현정화 마사회 탁구팀 코치와 현 국가대표 에이스 류지혜 선수를 만났다.
● 현정화
196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0살때부터 탁구를 시작해 부산 계성여상 1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87년 세계선수권 복식, 88년 서울올림픽 여자복식, 89년 세계선수권 혼합복식, 93년 세계선수권 단식 등에서 우승했다.
한국화장품 소속으로 선수생활을 하다 94년 은퇴했으며 98년 포스데이타 탁구팀 코치인 김석만(31)씨와 결혼했다.
● 류지혜
197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탁구에 입문, 부산 선화여상 1학년때 국가대표가 됐다. 92~98년은 제일모직에서 99년부터는 삼성생명 소속으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96년 애틀란타올림픽 여자복식에서 동메달을 땄으며, 97년 브라질오픈, 일본오픈, US오픈에서 복식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여자복식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현재 세계랭킹 8위이다.
-10년만에 단일팀이 구성되는데 감회가 어떠세요.
▦현정화= 물론 기쁜 일이지요. 그런데 너무 오랜만의 일이라 그런지 솔직히 담담합니다. 워낙 세월이 많이 흘러서 그런 것 같아요.
이런 기회가 좀 더 빨리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후배들이 10년전처럼 잘해서 다시 국민들에게 기쁨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류지혜= 91년 지바 대회에서 우승을 할 때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거든요. 그 때 텔레비전으로 중계방송을 보면서 '나에게도 저런 순간이 올까' 했었는데 남북 단일팀의 일원으로 뛰게 된다니 무척 설렙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도 큽니다.
단일팀인데다 우승 경험까지 있어 국민의 관심이나 기대가 대단하다는 것을 체감하거든요.
-북한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는데 별 문제는 없을까요.
▦현정화= 제 경우엔 문제 없었어요. 당시 북한 선수들이 우리쪽 훈련방법을 그대로 따라주었거든요.
또 그 전에 국가대표 생활 5~6년 하면서 국제 경기에 나가 자주 만났고 서로에게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같이 생활을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특히 (북한의) 이분희 언니는 86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처음 봤는데 처음부터 호감이 갔어요. 선배 언니들이 늘 분희 언니한테 졌기 때문에 언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제가 같은 해 앞서 열린 서울아시아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분희 언니도 제게 관심이 많았나 봐요.
그때 저보고 예쁘게 생겼다면서 먼저 말도 걸고 옆에 앉히고 그러더라고요. 그 후로 세계대회에 나가면 늘 서로 궁금해 하고 회식자리 같은데서 몰래 얘기도 나누고 그랬어요.
▦류지혜= 저도 얘기는 많이 나눠 봤어요. 그런데 93년 이후에는 북한이 경제적 이유 때문인지 세계대회에 자주 출전을 하지 않아서 정화언니처럼 그렇게 가까운 선수는 없어요.
북한선수들을 대할 때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없나요?
▦현정화= 글쎄 특별히 신경쓸 점은 별로 없다고 봐요. 다만 10년전 출전할 때는 절대 사상적인 얘기를 나누면 안되고 용어사용에 주의하라는 등의 교육을 받았지요. 예를 들어 '북한' '남한'이라고 해서는 안되고 꼭 '북측' '남측'이라고 하라고 하더군요.
-지바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느낌을 좀 말해 주세요.
▦현정화=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저랑 북한의 유순복 선수가 단식 2경기를 먼저 이겨서 복식만 이기면 됐는데 그 다음 복식과 단식에서 우리가 졌어요.
마지막 경기가 유순복 선수와 중국 가오쥔 선수의 대결이었는데 거기서 유순복 선수가 이겼어요. 경기가 끝나자 마자 선수와 코칭스텝이 뒤엉켜 울기 시작했는데, 기자들이 어찌나 많이 몰리는지 라커룸으로 우리끼리 피해들어가 부둥켜 안고 계속 울었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그 때 시상식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다른 나라 선수들은 다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는데 우리 선수단만 경기복을 그대로 입은 채로 시상대에 올랐어요.
울다가 옷갈아 입는 것도 잊은거죠. 사실 그때 우리는 '작은 통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어요. 아쉬웠던 것은 북한 선수들과 함께 한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거예요.
훈련이나 경기는 같이 했지만 숙소에서는 우리가 4층을, 북한선수들이 5층을 따로 사용했고,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감시원이 지키기까지 했거든요.
대회 마지막날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워 고별회식후에 홍차옥 선수랑 둘이 몰래 분희 언니 방으로 갔죠.
분희 언니 주려고 서울에서 가져간 금 한돈을 그때 주었고요. 거기에 '정화가 분희언니에게'라고 새겨놓았었는데 분희언니가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류지혜= 그 후로 북한 선수들과 연락은 있었나요?
▦현정화= 93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 때 한번 보고 그 후로는 못 봤어요. 꼭 다시 만나고 편지도 주고받고 싶은데.
사실 93년 세계대회에서 북한의 똑 같은 선수들을 단일팀이 아닌 라이벌로 만났을 때 "우리가 왜 싸워야 하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렸어요.
상황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탁구만은 단일팀 구성이 정례화했으면 좋겠어요.
-현재 남북한의 전력은 어떻습니까.
▦류지혜= 91년에 잘했기 ?문에 이번에도 우승을 기대하는데 전력도 예전만 못하고, 무엇보다 연습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아요.
4월 1일에 출국해 대회가 열리는 23일 전까지 딱 22일 동안 북한 선수들과 같이 연습할 수 있는데 이 정도로 호흡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예요.
▦현정화= 우리는 한달간 합동훈련을 했는데 그것도 부족하다고 느꼈지요.
후배들은 정말 부담이 크겠어요.
▦류지혜= 보통 세계대회가 2년마다 4,5월에 열리는데 대회가 있는 해에는 보통 그 해 1월부터 선수촌에 입촌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탁구협회 집행부의 내부 갈등 때문에 일정이 잡히지 않아 22일에야 입촌을 했어요. 소속팀에서 아무리 열심히해도 선수촌에서 하는 것과는 정신자세에서 차이가 납니다.
그 차이가 결정적인 1점의 차이를 만드는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 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모든 비난은 보통 선수들에게 쏟아집니다.
게다가 예전에는 중국만 의식하면 됐는데 이제는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등 유럽세도 무시 못할 실력을 갖추고 있지요.
걱정입니다.
▦현정화= 제 마음도 무척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여자단체전에서는 승산이 없지 않다고 봅니다. 단체전은 3명의 선수가 단식 다섯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치러집니다.
1ㆍ2번 선수가 상대편 1ㆍ2번과 번갈아 2게임씩을 하고 3번선수가 1게임을 하는데 지혜와 북한의 김현희선수가 1ㆍ2번을 맡아 선전을 해주면 해볼만 합니다.
지혜가 세계랭킹8위고 김현희 선수는 20위인데 사실 김현희 선수가 국제대회 출전기회가 잦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10위권에 드는 실력파이거든요.
▦류지혜= 제가 김현희 선수와 95년 맨체스터 세계선수권과 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한번씩 경기를 했는데 한번 지고 한번 이겼습니다. 포핸드 드라이브공격과 백핸드 이질 러버의 변칙공격이 아주 까다로웠습니다.
▦현정화= 지혜가 걱정이 아주 많은 것 같은데 북한 선수들과 한 팀을 이뤄보면 정신자세가 달라져 실력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어요.
91년 대회전까지는 우리끼리 나가서 중국과 결승에서 만났을 땐 내심 져도 된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단일팀이 되니까 나도 모르던 의욕과 자신감이 생겼어요.
-대표팀 구성은 어떻게 됐죠.
▦류지혜= 단일팀 정예멤버는 오사카 합동훈련 기간중에 결정이 되겠지만, 우리쪽은 저랑 이은실 석은미 김무교 전혜경 선수로 구성됐습니다.
남자대표팀은 탁구협회 문제 때문에 입촌을 거부하는 선수도 있고 해서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단일팀 구성이 서로 양보를 해서 탁구협회의 내분을 끝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북한쪽은 김현희, 김향미 선수 등이 올 것 같습니다.
▦현정화= 저는 개인적으로 꼭 가서 응원도 하고 북한 선수들도 만나고 싶은데 4월 8일이 출산 예정일이라서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혜랑 모든 선수들이 잘하리라 믿습니다. 지혜야, 잘 하고 와. 알았지?
▦류지혜= 네, 언니. 최선을 다할께요.
김기철기자
kimin@hk.co.kr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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