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만 많이 그리느냐고 물어요, 중증 지체 장애인인 저로서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 가야 합니다.사람을 믿을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을 그리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최근 그림 에세이집 '동행'을 펴낸 윤석인(50) 수녀는 하반신이 마비되고 손만 겨우 움직이는 장애인이자 화가이며 작은예수수녀회 원장이다.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는 인생을 은유한 '동행'은 장애인으로서 겪었던 체험과 그 위에서 느낀 인간에 대한 믿음이 배어있다.
다음달 서울 명동의 평화화랑(727-2336) 전시회에 이어 9월 바티칸에서 여는 개인전을 앞두고 그는 희망에 차 있었다. "내 의지를 굳게 세우고, 누군가를 믿는다면 그 믿음에 대한 응답이 온다고 확신해요." 지난해 꿈에 그리던 바티칸으로 갈 때만 해도 그는 빈손이었다.
단 몇 통의 편지만 띄운 채 무작정 바티칸으로 향했지만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베드로 성당 앞 아데나 화랑에서 전시회를 갖기에 이르렀다.
"화랑측에서 제 그림을 보고 즉석에서 '오케이'라고 말하더군요. 어둡고 거친 추상화들과 대비되는 제 그림의 건강한 사람 모습이 너무 좋다고 하더군요."
그의 그림에서 수녀가 그렸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다. 사람들의 따스하고 다양한 표정이 깃들어 있다. 여성의 누드도 그렇다. 그에게는 하느님의 창조하신 사람과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은 곧 신앙의 한 형태에 다름없는 것처럼 보였다.
10년전만 해도 그는 수녀가 될 수 없었다. 정상적인 몸을 갖지 못하면 성직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성구(52) 신부의 활발한 활동으로 199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작은예수수녀회'가 탄생했다.
윤석인 수녀는 1기생으로 입회해 6년의 수도기간을 끝내고 99년 종신서원을 한 후, 작은예수수녀회의 첫 원장이 됐다.
21명의 수녀중 7명이 장애인인 작은예수수녀회는 장애인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장애인 복지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윤 수녀는 열살 때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하반신이 마비되면서 40여년을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틀어박혀 지내던 그가 서른의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무렵에도 좌절은 계속됐다.
젊고 재능있는 화가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런 소박한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어떤 분이 말하더군요. 저를 보고 자신이 많이 변했다고요. 그때 느꼈습니다. 내 그림이 비록 대단치 않다 해도 내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요."
윤석인 수녀가 휠체어에 누워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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