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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추방으로 본 부시의 對러시아관 / "美가 초강국, 러는 2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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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추방으로 본 부시의 對러시아관 / "美가 초강국, 러는 2류"

입력
2001.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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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를 더 이상 특별대우하지 않겠다."러시아 외교관 52명에 대해 무더기 추방령이라는 강수(强手)를 감행한 미국의 조치는 단순히 스파이사건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와 대 러시아관을 선명히 드러낸 계기로 여겨지고 있다.

부시 정부는 그동안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이익과 의지를 극대화할 것이며, 이를 위해 미국의 일방적(unilateral) 판단과 선택에 따를 것임을 공언해 왔다. 지난 번 이라크에 대한 일방적 공습이 바로 이를 보여주었고, 얼마전 한미정상회담에서 나온 북한에 대한 강경발언이 같은 맥락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조치에서 엿보인 것은 러시아에 대한 부시 정부의 냉정한 인식이다. "러시아는 미국과 동열의 강대국이 아니며, 미국이 취해야 할 조치는 미국의 필요에 따라 단호하게 할 수 있다" 라는 시각이 진하게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최소한 외교ㆍ군사 분야에서 유지돼 왔던 미_러 양강 구도가 미국측에 의해 사실상 폐기됐다는 게 이번 러시아 외교관 추방을 보는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 같은 시각을 백악관측은 러시아 '현실론'으로 불렀다. 러시아는 냉전시대의 라이벌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화조류에 뒤쳐지는 2등 국가라는 인식이다.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잇따라 제기한 '현실적 접근(realistic approach)' '신 현실주의(new realism)' 이란 개념은 미국과 러시아에 존재하는 현실적 불균형을 직시, 경제 뿐 아니라 외교와 군사 분야까지 미국을 유일 초강대국으로 명시하는 새 외교정책의 수립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이번 외교관추방 결정에도 라이스보좌관의 입김과 대러시아정책이 깊이 개입돼 있다는 분석이다.

부시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러시아 제 2선론' 이 이미 정책에 반영되고 있으며, 현재 추진중인 미국의 일방적 핵무기 감축을 첫 사례로 제시했다. 러시아와 협상에 의한 상호감축 방식이 아닌 안보 수요에 따라 미국 스스로 핵전력의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이 "옛날 일(ancient history)" 이라며 폐기를 주장하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도 이 같은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차기 러시아 대사로 유력시 되는 토머스 그레험 미 카네기 재단 연구원이 21일 러시아 일간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에 기고한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러시아의 힘이 아니라 러시아의 약함" 이라는 내용의 기고문도 미국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부시 행정부의 러시아 현실론이 과연 미국 안보에 이익이 될 것인가 하는 것과 복잡한 국제질서에서 이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라이스 안보 보좌관은 "빌 클린턴 행정부의 러시아에 대한 낭만적 사고가 러시아의 안정에 오히려 해가 됐다" 며 "양국 관계가 이번 일로 악화하지 않을 것" 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카네기 재단의 러시아 전문가 마이클 맥폴은 "부시 행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시각을 정책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며 "러시아 현실론이 대만 무기판매, 수단 제재,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부 전복, 북한 미사일 등 산적한 현안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없다' 고 비판했다.

스토로브 탈보트 전 국무부 부장관도 "중요한 것은 현실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론의 실체를 제대로 아는 것" 이라며 강경론이 세계 안보에 득보다 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외교관추방조치와 러시아의 맞대응이 '신냉전'으로 우려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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