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의 외교관계가 냉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 출범 이후 국가미사일 방어(NMD) 체제 문제를 놓고 사사건건 충돌해오던 양국은 미국 국무부가 21일 러시아 외교관 등 최대 50여명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 데 이어 러시아가 이에 보복조치를 경고하면서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이번 미국의 조치는 1986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에서 미국 외교관 5명이 추방된 데 대한 보복으로 외교관 등 80여명을 추방한 이후 최대 규모. AP 통신은 이날 익명의 관리의 말을 인용, 국무부가 6명의 외교관을 공식적으로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선언했고, 10여명은 떠날 여유를 주는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추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도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이 향후 미국을 떠나야 할 50여명의 외교관 명단을 주미 러시아 대사관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CBS 방송은 외교관 등 미국에서 활동중인 러시아 정부 요원 50 여명이 추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22일 "미국이 50여명의 외교관을 추방한다면 러시아도 이에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번 러시아 외교관 추방조치는 지난 15년 동안 구 소련과 러시아의 스파이로 활동하다 지난 달 18일 체포된 연방수사국(FBI)의 방첩 요원인 로버트 핸슨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단행됐으며 실제로 이번 추방 명령을 받은 외교관 중 10여명도 이와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FBI에서 27년 동안 방첩 임무를 맡아온 핸슨은 1985년부터 현금과 다이아몬드로 총 140만 달러를 받고 러시아 대사관 지하 터널 등의 비밀정보를 넘겨준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FBI에서 수사중인 핸슨사건에 대해 5월 21일 의회에서 예비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미 행정부내에서 수주간의 논쟁끝에 내려진 이번 조치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 서기가 미국을 방문한 지 1주일도 안돼 이루어졌다는 측면에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부시 대통령 취임후 러시아 고위관리로서는 처음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이바노프는 미국이 뒷전에서 러시아 외교관 추방령을 고려할 때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콘돌리사 라이스 대통령안보담당보좌관등을 만나고 있었다.
미 행정부는 당초 보복수위를 고려하면서 소수의 고위직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하위직 외교관을 포함한 대규모로 할 지에 대해 심각한 논의가 있었으나 보다 단호한 조치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CBS는 수사기관 소식통들을 인용, 이번 외교관 추방조치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정보 요원들의 숫자를 줄이는데 핸슨 사건을 구실로 삼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러시아 정보 요원들은 구 소련 붕괴 후 감소했으나 최근 다시 냉전시대 수준인 450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주요 요원들은 워싱턴의 러시아대사관, 뉴욕의 유엔대표부, 샌프란시스코의 러시아총영사관 등에 등록한 외교관신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 국무부 외교관 명부에 공식등재된 워싱턴주재 대사관의 러시아외교관은 모두 114명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추방 명령이 과감하고 공격적인 조치라고 지적하면서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암약하고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숫자가 미국에서 활동중인 러시아 정보 요원보다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미국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미국의 외교관 추방 일지
2000년 8월 콩고 외교관 2명 (콩고의 미국 외교관 추방 관련)
2000년 2월 쿠바 외교관 1명 (간첩 혐의 미 이민국 관리와 공모)
1999년 12월 러시아 외교관 1명 (국무부 장관 사무실 도청)
1998년 12월 쿠바 외교관 3명 (마이애미 스파이 사건 관련)
1996년 5월 수단 외교관 1명 (이집트 대통령 암살 혐의자 인도 거부)
1986년 10월 소련 외교관 55명 (소련의 미국 외교관 5명 추방 관련)
최진환기자
choi@hk.co.kr
■美-中도 '스파이 의혹사건'
중국 군축대표단 일원으로 지난 연말 미국을 방문했던 인민해방군 대령이 미국에 망명했다고 홍콩과 대만 언론들이 22일 보도했다.
홍콩 명보(明報)와 대만 연합보(聯合報)에 따르면 이 대령이 미국 방문중 사라진 뒤 중국은 워싱턴 주재 중국대사관 등의 채널을 통해 미국 정부에 실종자 인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이 인도 요청을 거절, 외교문제로 비화돼 중미 관계에 또 한 차례 파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중국의 군비통제 및 핵확산방지 협상에 참여해 온 이 대령의 실종으로 협상 자료들이 미국에 넘어갔을 가능성에 대비해 총참모부와 총정치부, 총장비부, 총후근부 등 4개 총부(總部)별 전략배치를 수정하는 등 긴급 대책을 마련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도 특별회의를 소집, 대응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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