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8월 20일. 연극배우 추송웅씨는 데뷔 15년을 자축하는 연극 한편을 무대에 올렸다. 카프카의 산문 '어느 학술원에 제출된 보고서'를 토대로 한 모노드라마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은 그렇게 시작했고, 8년 동안 1,000여회 공연을 기록하며 영원한 그의 대표작이 됐다. 85년 그가 타계한 뒤에도 사람들을 '추송웅' 하면 슬픈 원숭이 '피이터'를 떠올렸다.그 슬프고 고독한 피이터가 그의 자식들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추씨의 15주기에 맞춰 문을 연 소극장 '떼아뜨르 추'(02-325-5574)가 개관작품으로 13일부터 공연하고 있는 '빨간 피터의 고백'은 자식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이다.
그 헌사는 단순히 옛날 연극의 부활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 감각과 실험성 가득한 디지털영화와 라이브 공연이 어우러지는 무대이다.
이 영화가 '고백'을 'Confession'이 아닌 'Go Back'이라고 정의하듯이, 어느날 침팬지로 변한 보조사육사가 과거 시간과 만나면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 영화는 미스터리와 코미디, 이미지즘과 몽타주기법을 뒤섞으며 시공간과 인과관계를 해체한다.
추씨를 쏙 빼닮은 아들 상록씨. 그는 이 작품의 감독이자 원숭이 피터이다.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면 그는 그룹 '록킹 시어터'의 멤버로 기타를 잡고 노래도 부른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분장을 하고 서울 동물원 챔팬지 우리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여동생인 영화배우 상미씨도 오빠를 도왔다. 학생 역을 맡은 그는 우리에서 피터가 흘리는 눈물을 보고 "어머, 원숭이가 울어"라고 외친다.
20여년전 아버지가 흘렸고, 지금은 오빠가 흘리는 그 눈물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평일 오후7시30분, 금ㆍ토ㆍ일 오후4시30분ㆍ 7시30분,월요일 휴관.
이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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