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이 21일 타계했다. 한국 경제를 오늘날의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표적 경제인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정 전 명예회장의 86년의 삶은 한국 경제 성장사 그 자체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출, 막노동판 노무자, 쌀가게 종업원 등을 거쳐 마침내 종업원 20만명, 연 매출 100조원 규모의 세계적인 기업 현대그룹을 이루어 낸 우리 경제의 산 증인이자 큰 별이었다.
정 전 명예회장은 단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성공한 기업인만은 아니었다. '왕(王) 회장'이란 별칭이 말해주듯 그는 다방면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는 뛰어난 외교관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누구보다 일찍 감지, 경제 교류를 앞세워 구 소련과 중국과의 수교에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특히 눈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향에 대한 향수를 발전적으로 승화시켜 남북 관계 개선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세계를 놀라게 했던 통일 소와 함께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넘은 것과 금강산 관광 실현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체육인이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의 유치에서부터 마무리까지를 성공적으로 해 내 한국의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 또 문화 예술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예술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992년 대통령 선거 출마는 그와 현대그룹에 많은 시련을 안겨주었다.
한국 최고 재벌 총수의 대권 도전은 금력(金力)이 권력까지 탐한다는 이유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기업을 하면서 수많은 정치인들을 만났지만 존경할만한 이를 만난 기억은 별로 없다"고 회고록에서 술회했던 것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기업만이 한 나라의 경제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바로 내가 현대에 심었던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토록 아꼈던 현대그룹은 현재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룹 모체인 현대건설은 유동성 부족에 직면해 있고, 현대전자 등 다른 계열사들도 비슷한 처지다.
절대적 카리스마로 그룹을 이끌었던 그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현대의 앞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철저한 구조조정으로 이를 불식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라는 점을 현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정 전 명예회장의 타계는 개발연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상징한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신용 중시, 하면 된다는 불굴의 자세, 강력한 추진력, 검소한 생활태도 등 그의 기업가적 정신을 앞으로 어떻게 계승ㆍ발전 시키느냐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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