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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固城 상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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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固城 상족암

입력
2001.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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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풍이다. 매서웠던 겨울의 기운은 이제 없다. 따스한 햇살과 바람에 바위 절벽마저 나른해 보인다. 남쪽 끄트머리의 땅 중 하나인 경남 고성(固城), 그 곳에서도 가장 남쪽인 하이면 덕명리의 봄바다에 섰다.한려수도 국립공원의 한 가운데에 있는 해변이다. 풍광이 독특하다. 맑고 푸른 물과 고깃배의 똑딱거림은 여느 바닷가와 같지만 파도를 맞고 있는 육지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그 것은 세월과 파도만이 만들 수 있는 장관이다. 풍광에 압도돼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바위 해안에 내려섰다.

덕명리 해안을 대표하는 것은 거대한 돌출바위이다. 상족암(床足岩)이라 불린다. 바위 절벽 아랫부분이 파도에 깎여 동굴이 됐다.

멀리서 보면 평평한 돌상을 받치고 있는 다리 같다. 그래서 이름이 '상다리 바위'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냥 '쌍발'이라 부른다.

높이 20㎙가 족히 넘는 바위는 책을 켜켜이 쌓아놓은 모습이다.

수억 년에 걸쳐 퇴적된 수성암이다. 수 ㎞의 땅 속에서 스스로의 무게에 눌리며 돌로 단단해진 퇴적층은 지각변동에 의해 땅거죽으로 솟았다가 파도와 만났다.

오랜 세월 모진 파도에 깎여 그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서해안에 이와 비슷한 바위가 있다.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의 채석강이다.

채석강이 켜가 조금 더 두텁고 햇살이 적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색깔이 검다. 그래서 뽀얀 상족암의 바위가 더 정교하고 세련돼 보인다.

상족암의 바위 굴은 바닷가에서는 보기 힘든 경우. 대개 급류가 흐르는 하천의 절벽에서 볼 수 있다. 그만큼 강한 물길을 만나야 만들어진다. 이런 해식 동굴이 생긴 것은 간만의 차가 만들어내는 물 흐름이 강렬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굴은 두 세 사람이 어깨동무하고 들어갈 정도로 넓다. 열 십자(十) 모양으로 가운데에서 만났다가 다시 사방으로 헤어진다. 바위 속 교차로는 열 명이 둘러 앉아도 좋을만큼 널찍하다.

선녀들이 이곳에 돌로 옷 틀(石織器)을 차려놓고 옥황상제에게 바칠 황금 옷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도 있다.

동굴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의 모습이 기묘하다. 깎인 바위의 윤곽에 따라 선녀가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가, 사나운 짐승이 되었다가 한다.

동굴 입구는 하나는 바로 바다에 드리워져 있다. 용왕이 방문했던 문일까. 비스듬한 바위를 타고 파란 물길이 찰랑댄다.

상족암을 중심으로 서쪽은 너럭바위, 동쪽은 자갈해안이다. 사람들은 주로 서쪽 너럭바위를 찾는다. 대학생들이 MT를 온 모양이다.

손수건을 꽁꽁 뭉쳐 공을 만들고 맥주병을 배트 삼아 야구를 한다. 얼마나 바위가 크면 야구를 할 수 있을 정도일까. 물이 완전히 빠지면 1,000명은 족히 올라탄다고 한다.

완만하게 물 속으로 드리워진 이 바위는 여름이면 그대로 해수욕장이 된다. 한반도에서 이렇게 크고 평평한 바위해수욕장은 흔치 않다.

몸에 모래를 묻히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누워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바위 앞 바다 건너편으로 꿈같은 경치가 펼쳐진다. 여인의 가슴을 닮았다는 유방도, 병풍처럼 이어진 병풍바위,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굴..

아름다움에 비해 다녀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거의 7시간 가깝게 차를 달려야 하는 먼 길이기 때문이다. 남쪽 대도시에서도 아는 이들이 드물었다.

그래서 개발의 때가 덜 탔다. 그러나 앞으로는 남녘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될 전망이다. 다름 아닌 공룡 발자국 때문이다.

이 곳에는 한반도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를 통틀어 가장 많은 공룡발자국이 있다. 수를 센 것만 4,000여 개.

'공룡의 낙원'이다. 아직 발굴이 진행 중인데다가 일반인 관람을 위한 체계적인 준비가 미흡하지만 이 작업만 마무리되면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 여행객이 꼭 들러야 하는 곳이 될 수도 있다.

발자국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냥 해변의 바위에 널려있다. 바위의 모습에 탄복하면서 자세히 들여다 보면 크고 작은 발자국이 혹은 바다로, 혹은 산으로 향하고 있다.

발자국만 따라 해안을 빙 둘러보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기암과 발자국 기행을 끝낸 곳은 상족암에서 약 1㎞ 정도 떨어진 덕명초등학교 앞. 지금은 폐교가 된 학교 운동장에는 중장비 몇 대만이 쓸쓸하게 서 있다.

봄볕에 땅이 녹아 질펀했지만 아이들의 발자국은 없다. 몇 년을 방치했을까. 폐교의 건물도 군데군데 지붕과 벽이 허물어졌다.

공룡들이 사라져 버린 직후 그들의 낙원도 이처럼 쓸쓸하고 허무했을 것이다. 옛 공룡의 낙원에서 보는 빛 잃은 아이들의 천국.

굳이 연결을 지어보다가 이내 머리를 저었다. 그 어마어마한 세월의 무게를 이 알량한 인생이 어떻게 짐작하겠는가.

고성=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세계 3대 공룡유적지

고성의 공룡 발자국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2년 1월. 경북대 양승영 교수팀에 의해서였다. 이후 약 4,300여 개의 발자국이 발견됐으며 1999년 9월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됐다.

지난해 한국고생물학회의 조사에서는 공룡알 화석까지 대량 출토됐다. 브라질, 캐나다와 함께 세계 3대 공룡발자국 집산지이자 '유라시아 대륙의 공룡 수도'로 평가받는다. 세계 공룡 연구가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고성의 공룡은 영화 '쥬라기 공원'의 후세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대략 1억년 전인 백악기 전기에 이 곳에서 낙원을 이루며 살았다. 백악기는 주라기 다음에 해당되는 기간.

당시 그 낙원은 지금과 같은 바다가 아니라 거대한 규모의 호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자국이 나타나는 지층에서 바다 생물의 화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호숫가 진흙에 남겨진 발자국 위에 수 천㎙의 흙이 쌓여 지하에서 암석으로 굳어진 뒤, 다시 표면으로 밀려 올라오는 과정에서 밖으로 노출된 것으로 분석된다.

고성의 공룡은 수각류, 용각류, 조각류 등 모두 3가지로 분류되는데 두 다리로 보행한 날개 달린 공룡인 조(鳥)각류가 10종으로 가장 많고, 육식공룡인 수(獸)각류는 2종, 네다리 보행인 초식공룡인 용(龍)각류가 4종이다. 큰 것은 무게가 40~50톤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룡의 발자국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조각류는 작고 희미하다. 수각류는 삼지창 모양이고 용각류는 코끼리 발자국처럼 둥글고 뭉툭하다.

뚜렷하지 않더라도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으면 발자국으로 본다. 일정하던 보폭이 갑자기 변하거나, 여러 종류의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혼재해 있으면 사냥이나 싸움 등 평소와 다른 상황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상에 잠기며 지천으로 널린 공룡 발자국을 구경하다 보면 머리 속은 어느 새 '쥬라기 공원'을 여행한다.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고성군 하이면 상족암 일대의 공룡 발자국 포인트는 모두 7곳. 모두 돌아보려면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당연히 썰물이었을 때 가장 많은 발자국을 볼 수 있다.

관찰순서

①제전~촛대바위 ②촛대바위~수련원 앞 해변 ③수련원 앞~상족암 ④상족암 서편 마당바위 ⑤파출소가 보이는 선착장 방파제 동편바위 ⑥대성수산(덕명초등학교(폐교) 남쪽 곶부리~군바위(초소자리) ⑦봉화골 북동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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