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94년 6월 미국이 북한 폭격 직전까지 갔었다는 것은 이제 비화도 아니다. 한국민은 당시 아무것도 모른 채 진행된 일이지만."미국은 영변 핵 의혹 시설에 대한 제한적 폭격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해 한반도 주변 미군 증파와 주한 미군 가족 등 미국 민간인의 소개 계획을 세웠다.
레이니 주한 미 대사는 공식 명령도 있기 전 서울에 와 있던 딸과 세 손자ㆍ손녀에게 한국을 떠나도록 했다. (돈 오버도퍼 '두개의 한국' )
당시의 대통령 YS는 최근 나온 회고록에서 그 때 클린턴 미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을 통해 "우리 60만 군대는 한 명도 못 움직인다"며 북폭을 강력히 반대, 전쟁을 막았다고 했다.
그런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벼랑 끝에 매달려 있던 북한 주석 김일성이 방북한 카터 전 미 대통령의 중재를 받아들인 것이 극적 반전을 가졌왔다.
당시 상황이 말해주는 것처럼 대북 정책에 있어 미국의 목표와 우리의 그것이 꼭 일치할 수는 없다.
남한은 남북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전쟁 없는 통일을 원하고 있는 데 비해, 미국은 핵 확산 억제 같은 세계 전략 속에서 북한을 대하고 외교적 노력으로 안되면 전쟁도 불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은 혈맹이지만 반드시 국익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외교의 기본이다.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의 대북 인식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그러나 양국의 대북 정책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서 무조건 DJ의 외교가 실패했다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방미전 'NMD 실수'로 미국의 신경을 건드려 놓고도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의 변화'를 쉽게 설득할 수 있다고 오판한 것을 비판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의 대북 정책을 금과옥조로 삼아 거기에 모든 것을 맞추려는 미국 중심 태도도 아니요,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국제 현실을 무시한 채 민족적 입장만 강조하는 반미의 자세도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후 DJ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양측을 동시에 설득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는 진단과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런데 DJ의 설득 대상은 미국과 북한 뿐인가. 한미 정상회담후 한나라당의 평가는 한마디로 "부시 대통령의 대북 인식은 우리 당과 똑같다"는 것이다.
이회창 총재는 "북한이 진정으로 변하고 있는가, 북한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상호주의와 검증, 투명성을 강조한다. 대북 인식이나 정책이 부시의 그것과 그대로 통한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둔 채 DJ 정부가 앞으로 한미간 대북 정책 조정 과정에서 미국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한국 내에서의 논란이 대미 설득력을 떨어뜨릴 것은 불문가지이다. 대북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미 행정부 관계자들이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혹시라도 한국의 야당이 공격하는 대로 DJ 정부가 대북 정책을 국내 정치나 정권 재창출을 염두에 두고 추진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문제는 더욱 어렵고 복잡해진다.
대외 정책을 놓고 여야가 꼭 한 목소리를 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남북문제 같은 중대사를 놓고도 대통령이 야당 총재와 한 자리에 앉는 것 조차 원하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DJ는 야당이 포용정책을 시비하고, 남북관계의 진전이 있으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고 서운해 할 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남북 문제에는 정권 보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가 걸렸다.
남북 문제는 내각 총사퇴 요구를 불러오고 DJ 정부를 궁지에 빠트린 '건강보험 재정 파탄'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DJ는 남북 문제에서 부터 대야 단절 정치를 풀고 대화해야 한다.
최규식 통일문제연구소장
kscho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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