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의 전격 경질은 상황의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내주 단행될 개각의 성격, 폭을 가늠케 한다. 인연에 따른 배려가 있을 수 없으며 국정 쇄신 차원에서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 인사가 이뤄질 것임을 말해준다.특히 3당 정책연합에 따라 자민련과 민국당 인사들을 기용할 경우에도 철저한 능력검증이 있을 것이라는 전언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금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임기 후반의 국정운영 전반이 뒤틀리게 된다"면서 "자민련도 엄선해서 추천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의 경우도 이미 김원길 의원이 복지부장관에 임명됐기 때문에 의원들의 추가 발탁은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다.
분야별로 보면, 외교안보팀의 거취가 우선적인 포인트이며 비교적 장수 장관이 많은 사회부처도 교체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외교안보팀
지난해까지만 해도 외교안보팀은 안정적 위상을 확보했으나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 논란,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시각차 등으로 도마에 올랐다.
한미 정상회담의 공식 결과만을 놓고 보면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상이한 대북접근법을 보일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고 NMD 논란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교체쪽으로 기울고 있다. 후임에는 민국당 한승수 의원의 기용이 유력하다.
한 의원은 주미 대사, 경제부총리를 역임했고 미 공화당 인맥도 갖고 있는데다 3당 정책연합에 따른 안배도 된다.
조성태 국방장관은 장수 장관으로 일단 교체 리스트에 올라있다. 후임으로는 비호남 출신인 김진호 전 합참의장과 이 준 전 1군사령관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김동신 전 육군참모총장도 후보감이나 군 수뇌진에 호남 출신이 많아 지역안배상 제외될 가능성도 있다.
외교안보팀의 수장격인 임동원 국정원장과 박재규 통일부장관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답방 등 현안 때문에 유임될 가능성이 크다. 임 원장은 정치권에서 "통일분야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며 교체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으나 그다지 흔들리지 않는 분위기다. 대북 밀사역을 해온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이 외교안보팀에 합류할 수 있느냐도 또다른 관심사이다.
■사회부처
김정길 법무부장관과 최인기 행정자치부 장관의 유임여부가 주목된다. 두 장관 모두 대과 없이 업무를 수행했다는 평이지만, 쇄신 차원에서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 법무장관의 경우 김 대통령의 임기 후반을 맞아 좀 더 장악력 있는 인사의 발탁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 호남 출신의 신건 조성욱 전 법무차관과 김상수 전 서울고검장, 박순용 검찰총장이 거론된다.
그러나 박순용 검찰총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5월에 법무장관 교체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최인기 장관은 '벌여 놓은' 일이 많아 유임이 점쳐지기도 하나 힘있는 인사의 발탁 가능성도 있다. 교체시 후임으로는 남궁 진 정무수석이 유력하며 이 경우 박지원 전 장관의 정무수석설도 나온다.
■경제부처
진념 경제부총리와 이기호 경제수석의 두 축은 유지되는 등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다만 산자부나 건교부, 해양수산부가 자민련의 몫이라는 게 변수다. 건교부나 산자부, 해양수산부 장관이 경질될 경우 장재식 정우택 오장섭 이완구 의원 등이 거명된다.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은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과정의 물의로 경질설이 나온다. 후임으로는 민주당 김효석 곽치영 의원 등이 거론되며 양승택 정보통신대학 총장도 물망에 오른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최복지 경질 안팎
김대중 대통령이 21일 최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을 전격 경질한 것은 건강보험 재정파탄 사태의 확대 재생산을 막으려는 고육책이다.
당초 청와대는 전후 사정을 아는 최 장관이 대책을 마련한 뒤 후임 장관을 임명한다는 '선 대책 후 경질'의 수순을 택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최 장관을 그대로 두고는 새로운 대책을 내놓아도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 전격 경질했다.
전격 경질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예고됐다. 김 대통령은 국무위원 보고가 끝난 뒤 평소 하던 마무리 발언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보고 도중에도 김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어 분위기가 어색하고 썰렁했다.
한 참석자는 "이한동 총리가 두 차례나 '대통령 말씀을 듣겠다'고 했으나 김 대통령은 대꾸 없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폐회를 선언했다"면서 "침묵이 질책 보다 훨씬 부담스러웠다"고 전했다.
국무회의 전 청와대 박준영 대변인은 "의약분업과 관련해 대통령의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김 대통령의 침묵은 국무회의 도중 뭔가 언짢은 일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참석자들은 최 장관의 보고가 주된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최 장관은 "의약분업 초기에 재정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의약분업의 효과를 3~4개월 만에 평가하기는 무리다"는 발언을 했다. "항생제 처방이 점점 줄어드는 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했다. 최 장관의 보고가 이어지면서 김 대통령의 안색은 더욱 굳고 어두워져 갔다는 후문이다.
국무회의 후 한광옥 비서실장은 곧바로 최 장관을 불렀다. 대외적으로는 이 자리에서 최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돼 있으나 한 실장이 경질의 불가피성을 얘기했다는 게 다수설이다.
대신 최 장관이 이 총리에게 사표를 낸 뒤 정부과천청사로 돌아가 기자회견을 갖고 자진 사퇴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한 실장이 최 장관에 경질을 통보하는 시각, 김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이 총리로부터 "내일(22일)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충분히 검토해 내 주에 발표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졸속에 대한 우려와 서두르는 태도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최선정 일문일답
21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최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은 "책임질 사람은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까지 해가면서 사의를 표명한 이유는.
"주저했다. 개각은 언제 있을지 모르겠고, 지금 나타난 건강보험 재정위기와 관련한 사태가 지나치게 방향없이 이 사회를 난도질해 안타까웠다. 책임자는 당연히 물러나야하는 것 아니냐."
-책임을 뒤집어 썼다고는 여기지는 않나.
"오늘의 보건의료제도 개혁 이전부터 지금의 모순구조가 생기기까지 30년간 복지부서 근무한 내가 기여했다. 개혁의 필요성, 잘못된 개혁을 바로잡자는 것도 내가 주창한 것이다."
-정치권의 문책론에 대한 입장은.
"공직을 시작한 이후 (내가 한일에 대해서는)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은 적이 없다.
문책론 나왔을 때 당연한 요구로 생각했다."
-청와대나 당에 하고 싶은 말은.
"재정안정을 위한 원칙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정부 내부에서 이미 대책이 정리됐다.
원칙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도 이해하고 동의할 것이다. 고통이 누적되면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 오늘 관계장관 회의에서 합의했다는 3가지 재정안정화 대책의 원칙이 지켜질 것 같은가.
"부정지출이 많으면서 국민들에게 동의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많든 적든 부정지출을 철저히 걷어내야한다. 심사조직과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는게 급선무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김원길 신임복지 누구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된 민주당 김원길 의원은 정치인 입각문제가 부상할 때마다 당내에서 입각 대상 1호로 거론돼 왔다.
김 신임장관은 국민회의 정책위 의장과 민주당 4·13 총선 선대위 정책위원장을 역임한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 정택통. 경제부처 입각을 희망했지만 사회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책경질되면서 후임으로 '징발'된 셈이다.
김 장관은 영국의회 초청으로 영국을 방문 중 21일 연락을 받고 급거 귀국길에 올랐다. 김 장관은 영국에서 전화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 문제는 새로 첫 단추를 어떻게 채우느냐가 중요하다"면서 "대책을 마련하겠지만 의약분업,의보통합을 원점으로 되돌릴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국민의 정부 출범후 정책위의장으로서 초기 개혁 작업에 깊숙히 관여했다. 대기업 사장출신으로 실물경제에 밝은 김 장관은 정책 면에선 상당히 신중한 입장이었다.
99년 3월 국민연금 확대실시를 보류하자고 했다가 당시 총리였던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의 사이에 불화가 생겨 정책위의장직을 내놓기도 했다.
김 장관은 또 99년 7월부터 실시 예정이던 의약분업을 1년 보류하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기고 출신인 그는 92년 14대 국회에 진출,전문경영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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