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는 그의 형제들이 이끌고 있는 한라와 성우 현대산업개발 등 위성 그룹들의 앞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이들 '형제기업'들은 현대와 직.간접적 연관을 맺고 있고 경영체계도 비슷해 현대의 후계 경영구도에 따라 내부 조직환경과 사업영역 등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이들 관계기업들은 그러나 이미 분가(分家)를 완전히 마쳤고 자체 사업분야와 후계구도까지 확고히 마련돼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거나 위상이 흔들리는 등의 부작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 명예회장의 6형제들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업집단을 이끌며 한때 "정씨 일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업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거대한 사업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의 친동생 정인영(鄭仁永) 명예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라그룹은 한때 국내 굴지의 종합그룹으로 성장했으나 98년부터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과다한 부채비율로 기업이 휘청거리자 계열사 매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혹독한 구조조정의 한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국내 중공업계에서 위세등등하던 한라중공업은 경영악화로 현대중공업 위탁경영에 들어가 상호도 삼호중공업으로 바뀌었고 만도기계와 한라시멘트는 외국계회사에 매각됐다. 한라건설 등 나머지 계열사 회장은 차남인 몽원(夢元)회장이 맡고 있다.
둘째 동생 정순영(鄭順永)씨가 일군 성우그룹은 성우종합건설 현대시멘트 성우종합레저 현대종합금속 성우정공 ㈜성우 성우전자 성우정보통신 등 11개 계열사를 거느린 탄탄한 중견그룹으로 자리잡았다. 장남인 몽선(夢善)씨가 회장을 맡아 레저와 건설로 사업을 전문화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회장을 맡아 한때 현대그룹의 2인자로 꼽혔던 정세영(鄭世永)회장은 1999년 정씨 일가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을 통해 현대차 경영권을 몽구(夢九)회장에게 넘겨주고 현대산업개발을 넘겨받아 독립경영체제를 구축했다. 두 사람 간의 사업교환 및 분가는 지금까지도 두 회사의 인사 및 조직관리에 잡음이 생길 정도로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포니 정'으로 불릴 정도로 32년간 자동차인생을 걸어온 정 명예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을 아들인 몽규(夢圭)에게 실질적인 경영을 맡기고 조언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경영권 정리 때 "큰 형님 덕에 화려한 직장생활을 했다"며 "한번도 오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해 정 명예회장의 그늘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밖에 정 명예회장의 처남인 김영주씨 자동차 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 회장을 맡고 있고 작고한 정신영씨의 아들 몽혁씨가 현대정유사장을 맡고있으며 현대석유화학 지분도 상당수 갖고있다. 막내인 정상영씨는 고려화학과 금강종합건설 금강레저 등 계열사를 가진 금강고려화학(KCC)을 맡고 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 정회장 형제
정인영-한라그룹 명예회장
정순영-성우그룹 명예회장
정희영-남편 김영주 한국프랜지 회장
정세영-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신영-작고, 아들 정몽혁 현대정유사장
정상영-금강고려화학 회장
■정주영 명예회장 어록
▶ 어릴적 가난이 싫어 소판 돈을 갖고 무작정 상경한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묵묵히 일 잘하고 참을성 있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 걸어왔다. 이제 그 한 마리가 천마리의 소가 되어 빚을 갚기 위해 고향산천으로 간다.
▶ 나는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있고 건강한 한, 나한테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낙관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 외국언론들은 한국을 평가하면서 '포니 수준을 못 따라오는 한국의 정치수준'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나 또한 역대정권을 겪으면서 정치개혁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느껴 정치에 뛰어들었다. 92년 대선에서 낙선한 것은 나의 실패가 아니라 YS를 선택한 국민들의 실패요, 나라를 이 지경으로 끌고간 YS의 실패였다.
▶ 앞으로 동북아시아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통일한국등 5국체제가 돼야 한다. 통일 한국은 동북아시아를 이끌어갈 '기관차'가 될 수 있다. 남한이나 북한 어느 쪽도 통일을 못한 채 허점을 보이면 밖의 네 나라가 경쟁적으로 달려들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 오늘날 우리 사회 총체적 위기의 근본 원인은 '썩은 정치'때문이다. 이 썩은 정치의 온갖 폐단을 깨끗이 청소하는데서 위기 탈출의 국민적 집단의지를 창출할 수 있다.
▶국내외 학자들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경제에는 기적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온 국민의 진취적인 기상, 개척정신, 열정적인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다.
▶ 나는 젊었을 때부터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 그날 할 일이 즐거워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의 기분은 소학교 때 소풍가는날 아침과 같다.
▶ 정부는 민간기업의 업종 선택에 관여하거나 제한해서는 안된다. 다만 정책 유도에서 그 역할을 그쳐야 한다. 민간기업은 정부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 근검절약정신과 신용만 있으면 작은 부자는 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집보다 자가용을 먼저 사고, 기저귀 가방에 아이를 들쳐 업고 핸드폰을 들고 다닌다.
▶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여앉아 머리로 생각만 해서 기업이 클 수는 없다. 기업이란 현실이요, 행동함으로써 이루는 것이다. 우선 행동해야 한다.
▶ 정부가 부패해 부정을 일삼으면 기업도 국민도 다 함께 부정심리에 물들어 부정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된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첫 구호를 부정부패의 척결로 외쳤으나 유감스럽게도 번번이 공허한 외침에 그쳤다.
▶ 나는 '가장 큰 기업'인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깨끗한 기업'이라는 평가가 그 앞에 붙여지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기회 있을 때마다 내가 우리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 인간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 나는 소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평생 '좋은 책 찾아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첫째가는 스승이 나의 부모님이셨다면 둘째 스승은 책읽기였다고 할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