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밤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별세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놀라움과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도 현대그룹과 주가 등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AP 등 외신들도 정 전 회장의 사망소식을 일제히 타전하고 그의 프로필 등을 상세히 전했다.
○.사업을 하는 최성린(崔聖隣ㆍ53)씨는 "우리나라 경제의 거목이 타계해 안타깝다.기업가로서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정말 유감"이라고 애도했다.
회사원 박정구(38)씨는 "한국 현대사를 이끌어 온 큰 별이 졌으니 내일 당장 주가가 폭락하지나 않을 지 걱정"이라며 "정씨의 후손들이 고인의 경영철학을 발전적으로 계승, 기존 재벌의 불합리성을 극복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고려대 경영대 이만우(李晩雨)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모든 사람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과 '기업가 정신'을 보여준 분"이라고 애도하면서 "우리나라 산업개발 대부분의 분야가 고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경영에 대한 놀라운 감각을 소유, 고비마다 최고의 승부수를 던져 성공시대를 일궈낸 대표적 경영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하지만 승계작업을 잘못 마무리해 현대그룹이 가장 큰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별세해 국민에게 우려를 끼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는 이동기(李東基ㆍ33)씨는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정씨는 70~80년대 고도성장시대에 큰 획을 그은 대표적 경제인이었다"며 "그의 죽음은 추진력과 외형성장을 대표하는 구(舊)경제체제가 막을 내리고 분석력과 계획성으로 대표되는 신경제 패러다임이 본격화하는 이정표적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젊은층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대학생 박찬재(朴贊宰ㆍ25ㆍ고려대 통계학 4년)씨는 "실감이 나지 않고 현대그룹의 장래가 몹시 불안하다"며 "그러나 정씨가 대단한 위인도 아닌데 정규방송까지 중단하며 웬 호들갑이냐"고 말했고 문재웅(文載雄ㆍ25ㆍ연세대 법학 3년)씨는 "한때 재벌이 경제파탄의 주범이라고 하더니 이제와 위인 취급하는 것은 웃긴 일 아니냐"고 반응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21일 저녁 서울 송파구 현대중앙병원측은 영안실을 말끔히 단장하는 등 만일에 사태에 대비했다.
○.이날 저녁 정 명예회장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서울 송파구 현대중앙병원에는 정세영, 정상영씨 등 형제들을 비롯, 정몽구 현대자동차회장, 정몽헌 현대건설회장 등 직계 가족들을 비롯, 현대 계열사 사장들이 속속 도착했다.
정 명예회장이 별세하기 2분전인 10시5분께 정 명예회장이 입원해 있던 병실에는 동생 정상영회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들어가자 "뭔가 큰일이 났다"는 조짐이 취재진에게 전달됐다.
한편 현대그룹측은 정 명예회장이 숨진 서울중앙병원 18층의 취재진 출입을 통제한 채 빈소문제 등 사후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오후11시5분께 서울중앙병원과 현대측 관계자들은 동관 6층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 명예회장의 별세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회견에서 이 병원측 대변인격인 피수영(소아과)교수와 정 명예회장의 주치의인 이영수ㆍ최재원(내과)교수는 "정 명예회장이 1주일 전부터 이 병원 동관 3층 중환자실에서 계속 입원해오다 오늘 오후3시께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세인 급성호흡부전증이 심각하게 나타난 뒤 의식이 없어졌고 거의 같은 시각 가족들에게 연락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 명예회장은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없이 평안히 별세했다"면서 "숨진 뒤 산소호흡기를 곧바로 떼낸 뒤 3층 중환자실에서 18층 VIP룸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임종 때 특별한 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특별한 말이 없었다"고 답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정녹용기자
1trees@hk.co.kr
■현대그룹 스케치
정 전명예회장의 사망소식이 전해지면서 서울 계동 현대사옥과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에는 많은 임직원들이 나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못했다.
정수원(鄭淳元) 현대차부사장 등은 핵심 측근들은 서울중앙병원으로 달려가 정 전명예회장의 가족들과 장례절차 등을 논의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유인균 현대하이스코회장을 위원장으로 50여명의 장례준비위원회를 구성, 장례절차와 의전문제 등의 협의를 벌였다.
또 현대그룹 PR본부는 정 전명예회장의 사망에 대비해 미리 제작해둔 화보와 일대기 등을 담은 CD 등을 일제히 언론사에 배포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보였다.
계동사옥 근처에는 밤 9시 30분께 저녁식사중이던 일부 간부들이 황급히 식당을 빠져나와 사옥으로 들어왔고 퇴근했던 일부 직원들도 사옥으로 돌아오기도했다.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현대호를 이끌어온 정 명예회장이 막상 타계했다고 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며 "정 전명예회장이 좀더 건강했더라면 현대그룹이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다른 한 임원은 "정 전명예회장이 모기업인 현대건설이 유동성위기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더욱 아쉽다"며 " 편안히 눈을 감으셨는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AP 등 외신들도 정 전명예회장 사망소식을 전세계에 일제히 타진하고 정 전명예회장의 개인 프로필 등을 상세히 전했다.
조재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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