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외사(劫外寺). '불생불멸'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시간 밖의 절'이란 뜻이다. '8년 장좌불와(長坐不臥)' '10년 동구불출(洞口不出)' 등 철저한 수행과 무소유의 삶으로 추앙받았던 성철(性徹ㆍ1912~1993)스님 열반 8주기를 맞아, 성철스님의 생가가 복원되고, 성철스님 기념관과 겁외사가 건립됐다.해인사 성철스님 문도회는 30일 오전 11시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스님 생가에서 '성철대종사 생가복원 및 겁외사 창건 회향 법회'를 갖는다.
엄혜산이 병풍처럼 자리잡고, 앞으로는 진주 남강 상류인 경호천이 흐르는 곳에 자리잡은 생가는 성철 스님이 태어나서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기 전까지 머물던 곳이다.
지주 집안의 7남매 중 장남이었던 성철 스님이 출가하자 부친은 충격을 받아 저택을 부수고 인근 지역으로 이주했다.
허물어진 생가는 논밭으로 있다가 이번에 복원된 것이다. 성철 스님은 출가 후 한번도 고향 땅을 밟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생가 복원과 함께 스님의 유품이 전시된 성철스님 기념관도 아울러 마련돼 스님의 일생과 정신을 진솔하게 느껴볼 수 있다.
스님이 평생 지녔던 누더기 가사와 장삼, 고무신을 비롯, 단성소학교 시절 60여명의 학생 중 6~8등의 성적을 보여주는 학적부나 성철 자신이 쓴 도서목록도 전시돼 있다.
성철이 스무살 때 적은 '이영주(성철의 본명) 서적기'에는 중용, 대학,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하이네 시집, 성경, 자본론, 사적 유물론 등 동서양의 서적들이 적혀있어 청년 성철의 지적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젊은 시절의 메모에는 'from eternity to eternity'(영원에서 영원으로) '불멸' 등의 단어가 눈에 띈다.
성철스님은 1980년대 어느 법문에서도 '불생불멸'로서의 불교의 가르침을 펼치기도 했다. 생가와 함께 건립된 사찰인 '겁외사'는 성철스님이 말년에 부산에 요양차 지내던 암자에 붙여주었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생가 복원을 주도한 성철스님의 상좌 원택스님(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은 "겁외사는 성철 스님 개인을 추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철스님처럼 실천하면 누구나 영원한 진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에서 창건됐다"며 "겁외사는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 발심(發心)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생가 복원은 지난 98년 문도회와 산청군청이 공동으로 시작해 2년 6개월만에 완공된 것으로, 국고보조 16억원과 제자, 신도들의 모금 등 모두 52억이 소요됐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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