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 강화읍에 사는 이모(53)씨는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낸 '수진자(受診者)조회용 1월분 진료사실 확인서'를 들여다보고 분통이 터졌다.1년전에 사망한 부친을 포함한 가족들이 가본적도 없는 A의원에서 최장 10일 동안 진료받았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의원이 가짜환자를 만들어 보험료를 부당하게 타낸 단적인 예다.
바닥을 드러낸 건강보험(의료보험) 금고에서 보험료가 이처럼 줄줄 새나가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재정누수액이 얼마인지 알지도 못한다.보험재정 파탄은 잘못된 재정 추계, 무리한 수가인상 못지 않게 엉망인 보험관리가 큰 몫을 했다는 지적들이 터져 나오고있다.
복지부의 2001년 재정전망에 따르면 올해 공단과 국민이 병ㆍ의원 및 약국에 진료비로 지급해야 할 돈은 총 13조5,700억원이다. 2000년에도 9조원의 재정이 급여비로 빠져 나갔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엉터리 청구와 심사소홀로 야기된 누수액이 전체 급여비의 10%가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있다. 이 돈을 모두 틀어막으면 올해에 1조원 이상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험료를 20% 인상하는 것과 똑같은 재정안정 효과를 가져온다. 그런데도 복지부는 "복잡한 진료체계 등을 감안할 때 재정누수 비율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지금껏 통계를 잡지 않고 있다.
부당청구액을 심사후 바로잡는 '진료비삭감률'이 0.7%에 그친 것만 보아도 얼마나 엉망인지 알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삭감률은 대부분 10%가 훨씬 넘는다. 우리의 경우 진료비를 신청한 병ㆍ의원 중 99.3%가 한푼도 깎이지 않고 돈을 받는 셈이다.
더욱이 솜방망이 처벌은 의사와 약사의 간을 키우고 있을 뿐 이다. 엉터리 청구가 들통나더라도 기껏해야 영업정지다. 미국은 의사 및 약사면허를 취소, 가운을 벗게하고 있다.
정부가 21일 마련한 진료내역 통보, 수진자 조회강화, 실사대상 확대 등 재정누수 방지책도 실효를 거둘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실사 인력으로는 고가약 처방, 과다ㆍ장기처방 기관을 적발해낼 수가 없다.
전체 진료건수의 10%인 500만건의 진료내역을 통보하는 것도 공단측이 1,000여명의 감원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어려운 일이고, 실사대상 기관을 265개에서 1,000개로 4배 가량 늘리는 방안도 복지부의 역량으로 볼 때 역부족이다.
최병호(崔秉浩)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진료비 부당청구에 대한 심사 및 처벌기능을 강화하고 수가체계를 변경하면 거듭된 수가인상의 잘못을 바로잡고 국민의 부담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번에 특단의 대책을 시생하지 못할 경우 파탄의 악순환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진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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