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인생을 살면서 세번쯤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거나 모르고 지나치기는 하지만.이성규(李星圭ㆍ42)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 설립추진위원회 사무국장에게 기회는 곧 '인연'이었다. 대학(서울대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곳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1985년.
한 교수로부터 볼품없는 쪽지의 추천서를 받아들고 한국신용평가라는 생소한 회사를 찾으면서 당시 사장이던 이헌재(李憲宰) 전 재경부장관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의 말 대로라면 "(이 전장관은)내 인생을 뒤바꿔놓은" 사람이었다.
"외국에 나가 수리경제학을 공부해 볼 생각으로 잠시 돈을 벌 요량이었어요. 하지만 기업들의 속내를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업무를 하면서 원론적인 학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었죠."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지만 재무제표 하나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그는 이 전 장관의 참모 역할을 하면서 재무관리의 전문가로 변신했다.
경제학을 포기하고 연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딴 것도 이 무렵이었다.
"평생직장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신의 상품가치를 최대한 높여라." 이 전장관의 조언 때문이었을까. 입사 10년만인 1994년.
그는 과감히 제일제당으로 자리를 옮겨 엔터테인먼트 분야 경영전략을 수립하는데 몰두했고 96년에는 다시 한국EMI뮤직에서 또 다른 경험을 쌓았다. 다시 2년 뒤. "이제는 정말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선진국의 기업지배구조를 배워 볼 생각으로 비자까지 받아놓고 유학갈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두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금융감독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 전 장관이 '손짓'을 했고, 그는 망설임없이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된 그 기회를 받아들였다.
"98년 3월 금감원으로 갔는데 3개월 가량 아무런 일도 주어지지 않았어요. 뒤늦게 안 것이지만 그해 6월25일 맺어진 기업구조조정협약 업무를 맡기기 위한 것이었죠." 직책은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기업들을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이라는 새로운 채권단간 자율협약을 통해 회생시키는 업무를 실무 선에서 총괄하는 역할이었다. 여기서 오호근 전 기업구조조정위원장이라는 독특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과 인연을 맺은 것도 큰 행운이었다.
109개에 달하는 기업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매월 1~2차례씩 기업을 방문해 실태를 점검하는 등 성의를 쏟았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려는 채권금융기관 간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성심껏 중재에 나섰다.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니 시장질서를 파괴한다느니 하는 여론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지만 과연 그가 없었다면 대부분의 기업을 워크아웃에서 졸업시키는 '성공'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말부터 3개월 가량 서울은행 여신담당 상무로 잠시 '외유'를 한 뒤 그는 다시 '본업'으로 복귀했다. 결자해지랄까. 이번에 주어진 역할은 본인이 시작했던 워크아웃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는 것이다.
"대우 계열사를 포함해 남아있는 35개 워크아웃 기업 중 10개 안팎에 대해 CRV를 설립해 효율적으로 뒷마무리를 하는 작업입니다."
그는 6~7월께 CRV 설립 작업이 마무리되면 인생의 세번째 기회를 찾아 나설 작정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10년 정도 몸을 바쳐 종업원들에게 비전을 주고 주가를 높일 수 있는 기업 경영자가 되고 싶다"는 그의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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