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대통령을 지낸 메리 로빈슨(57) 유엔 인권고등판무관(UNHCHR)이 19일 전격적으로 사임의사를 밝혀 유엔이 발칵 뒤집혔다.로빈슨 고등판무관은 이날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 연례회의 개막식에서 "유엔 체제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 인권 보호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생각"이라며 4년 임기가 끝나는 오는 9월 유엔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유엔 관계자들은 산하 기관장들 대부분이 연임을 원하는 것과는 달리 그가 연임 포기한다는 발언을 하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가 사임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보다 인권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에는 유엔 체제가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인권 업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국 정부와의 마찰과 압력을 들 수 있다.
그는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분쟁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인권침해 조사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아랍 국가들로부터 받았다. 또 아직 식민시대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 등의 빈국들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펴 선진 공업국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날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아웃 사이더로 있는 것이 좋다'며 충고한 적이 있다"고 말해 고충의 일단을 내비쳤다. 또 유엔 내에서 인권 업무가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사임 결심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년 예산이 유엔 전체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2,00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1997년 취임한 그는 지명도가 낮았던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콩고, 알제리, 시에라리온, 코소보, 동티모르, 체첸 등의 인권침해를 국제적 이슈로 부각시켰고, 지난 해와 올해 유엔 인권위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러시아를 인권 문제 비 협조국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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