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교육부총리가 '창발성'(創發性)이란 용어를 자주 쓰는 것에 교원단체총연합회가 시비를 걸었다. 또 '색깔론'시비인가 하는 순간 논란 자체가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따질 건 따져 두는 게 좋겠다.교총은 이 말이 개념자체가 모호하고 교육과 일상에서 쓰지 않는 반면에 북한이 헌법과 일상에서 쓴다고 전제, 교육부총리가 우리 교육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예사로 넘길 수 없지만, 교총의 주장은 전제부터 틀렸다.
■창발성이란 말을 흔히 쓰지는 않지만, 북한 전용어는 결코 아니다. 일반에겐 오히려 북한의 일상 용어란 사실이 생소하다. 개념이 모호한 것도 아니다.
국어사전의 풀이를 떠나, 대체로 창의와 계발(啓發)정신을 아우르는 정도로 이해한다. 그래도 시비할 이들을 위해 인터넷 사이트에서 실제 사용례를 보자.
"국민의 창발성을 계발하는 국립대학." "창발성을 최대한 이끌어내 고객을 감동시키는 벤처기업." "무한한 창발성을 발휘하는 조직."등 숱하다.
■특히 경찰청 홈페이지 보안경찰 항목도 "개인의 창발성 등 인류 보편의 자유와 인권의 보장을 위해."라고 쓰고 있다. 체제를 수호하는 보안경찰의 정체성도 시비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런 것 까지 찾아보진 않았겠지만, 명색이 교육자 단체가 창발성 용어조차 처음 듣는 체 시비 걸고 나선 것은 교육자적 양식을 의심케 한다.
교육부총리가 개혁정책으로 교원단체의 권익을 해칠 것을 지레 우려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헛발질이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웃어 넘길 수 없는 심각성을 안고 있다. 안팎의 정세 변화 속에 집단의 이해에 따라 이념과 색깔을 걸고 나서는 매카시즘적 작태가 다시 고개 든다는 경고다.
교육을 비롯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척 하지만, 기득권을 지키는데 눈 어두운 기회주의적 발상이다.
명분이 무엇이든 간에, 무책임한 매카시즘적 비난과 선동은 사회를 혼란시킬 뿐 이다. 격동기일수록 사회 전체가 냉철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그게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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