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에 따른 의보재정 파탄은 정부의 특정 부처, 특정인 한 두 사람이 책임 질 사안은 아니다. 이한동 국무총리가 복지부를 질타한데 이어 정치권 일각에서 복지부 장관의 인책사퇴를 거론하는데, 이는 심히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다.여권 내 의약분업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거의 없는 탓이다. 그럼에도 당과 정부가 책임을 놓고 서로 떠 넘기기 추태를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꼴불견이다. 이를 보고 국민은 분노에 앞서 허탈감마저 느끼게 된다.
이 총리가 앞뒤 가리지 않고 우선 복지부의 책임을 거론한 것은 잘못이다. 그 책임의 선상에서 앞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실은 총리이다.
총리가 의약분업 실시에 즈음, 내각의 수장으로서 정부를 독려하고 담화문을 통해 국민을 설득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총리실은 국무조정의 기능을 발휘, 얼마든지 의약분업의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청와대나 당도 그 책임의 범위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은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의약분업을 시작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문제가 없다고 조언한 사람들이 바로 당과 청와대 비서실 사람들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실제로 정부측 사람들은 의약분업이 정치권에서 먼저 시작한 일이라며 정치권에 대해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정부가 정치권의 체면을 살리려다 오히려 덤 터기를 뒤집어 쓴 경우라는 투다. 의약분업은 이 정권의 대선 공약이었다.
당초 추진명분은 의약분업을 해도 국민부담은 늘지 않을 것이며, 결국 의ㆍ약계는 물론, 국민들도 이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런 '국정홍보'는 지금도 공영방송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그것이 얼마나 안이한 발상이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병원과 약국은 누굴 위한 분업이냐고 아우성이고, 국민은 국민대로 이리저리 쫓아 다니느라 고달프다.
더욱 한심한 것은 오랜 기간 국민 건강보호에 기여해 온 의료보험의 재정을 거덜나게 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 4조원이 소리없이 새나가는가.
왜 국민들이 그 돈을 충당해야 하는가. 이번 기회에 정책판단의 오류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는 반드시 가려져야 한다. 그러고 난 뒤 국민부담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 당과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희한한 일들, 모두가 모두를 향해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이런 행태는 오히려 국민의 심기만 불편하게 할 뿐이다.
행여 한 두 사람 희생양을 만들어 적당히 책임을 지우는 선에서 사태를 해결하려 하거나, 정치논리를 내세워 어물쩍 넘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사태는 더욱 악화의 길로 치달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