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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산은 산으로, 갯벌은 갯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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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산은 산으로, 갯벌은 갯벌로

입력
2001.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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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간척지의 나라'라는 이미지다. 그런데 최근 힘들여 쌓아놓은 제방들을 하나 둘씩 허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간척지를 원래의 습지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 일껏 가꿔온 땅을 다시 바다에 돌려주기로 했을까.

요즈음 새만금사업 관련 논쟁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낡은 사고방식을 벗어 던지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들은 농사를 짓든 공장을 세우든 사람의 손이 닿아야만 쓸모 있는 땅이 된다고 생각한다. 산은 산으로 갯벌은 갯벌로 놓아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중요하다 해서 무조건 개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와 우리의 사정이 똑같을 수 없다는 점도 흔쾌히 인정한다.

그러나 개발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것의 경제적 타당성이 명백하게 입증되어야 한다. 즉 자연 훼손에서 오는 피해를 상쇄하고 남을 만큼 큰 이득이 생긴다는 점을 분명히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새만금사업은 바로 이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 주도하에 만든 사업평가 보고서는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보고서를 읽어보면 결론을 미리 내고 그 근거를 억지로 짜맞춘 한 편의 시나리오 같은 느낌이다. 최근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이 보고서에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사업에서 나올 편익을 부풀리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편익 부풀리기 수법의 전시장을 방불할 정도다.

반면에 환경에 미칠 악영향과 이로 인해 발생할 비용은 거의 무시하고 있다. 이런 대규모 토목사업은 주변 생태계에 뜻하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인데, 보고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업 강행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이미 많은 돈을 투입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 부었든 결코 그것이 사업 강행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이미 지출되어 어떻게 하든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매몰비용이라고 부른다.

매몰비용은 현재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의 기본원리다. 과거에 연연해하지 말고 현 시점에서 가장 적합한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말에 '본전을 뽑는다'라는 표현이 있다. 포기해야 마땅한 일인데 본전을 뽑는다는 생각으로 버티다 공연히 낭패를 보는 사례가 많다.

새만금사업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타당성이 없는데도 들인 돈이 아까워 사업을 계속하면 국민의 피해만 더 커질 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미 지출된 돈이 얼마인지는 사업 계속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새만금사업이 지역 주민의 숙원사업이라는 정치적 논리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 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지금까지 제시된 어떤 자료도 타당성이 있음을 명백하게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할 책임이 사업 강행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다. 시화호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는 터라 또다시 대규모의 낭비와 환경파괴가 거듭될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걱정 말라고 큰소리 치지만 시화호 만들기 전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래 놓고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일이 또다시 되풀이될까봐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준구ㆍ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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