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아홉살 먹은 남자 아이입니다. 밤에 자다가 한두 번씩은 꼭 이불에 오줌을 쌉니다. 학원이나 교회에서 운영하는 캠핑을 따라가고 싶지만, 밤에 오줌을 쌀 것 같아 엄마한테는 가기 싫다고 말합니다. 저도 빨리 나아서 캠핑을 가고 싶어요.#2 중학교 남학생입니다. 밤에 이불에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자주 그러기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엄마에게 야단도 많이 맞지만, 고쳐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은 자다가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꿈을 꿉니다. 그러면 바로 놀라서 깨곤 하는데, 여지없이 이불이 젖어 있습니다.
한국야뇨증연구회(회장 조수철 서울대 의대 교수ㆍ안내 전화 080-555-8095)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www.bedwetting.co.kr)에 올라온 글들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가 밤에 소변을 가리지 못해도 단순히 '성장과정의 통과의례'로 여겨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소아비뇨기과 전문의들은 세 살이 넘은 어린이가 밤에 소변을 가리지 못 하는 증상이 한 달에 2회 이상 반복되면 야뇨증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소변을 가리지 못 한다고 야단만 치거나 방치할 경우 정신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어 부모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어린이 다섯 명 중 한 명은 야뇨증
고려대안산병원 비뇨기과 문두건 교수팀이 최근 5개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 692명을 조사한 결과 154명(22%)이 야뇨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유치원생 26%, 초등학교 저학년 22%, 초등학교 고학년 19.6% 등으로 조사됐다.
보통 야뇨증은 1차성과 2차성으로 구분된다. 1차성은 소변을 가리기 시작하는 3~5세 이후에도 계속 야뇨증상을 보이는 경우. 보통 야뇨증이라고 하면 1차성을 가리키며, 태어나서 한 번도 소변을 제대로 가려본 적이 없는 경우이다. 2차성은 소변을 가리다가 어느 시기부터 다시 야뇨증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1차성은 신체적, 2차성은 심리적 요인
1차성 야뇨증은 유전, 호르몬 분비, 수면양상 등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흔한 원인은 방광에서 소변의 생성을 억제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하는 '항이뇨 호르몬'이 적게 분비되기 때문. 부모 중 어느 한 쪽에게 야뇨증이 있었다면 자녀의 45%에서, 부모 모두 야뇨증이 있었던 경우 75%에서 나타난다.
자녀의 야뇨증으로 병원을 찾는 부모들 중에는 아이가 잠을 지나치게 깊이 잔다고 걱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면 중 방광에 소변이 가득 차면 뇌가 자극을 받아 잠에서 깨어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야뇨증 어린이는 방광의 자극에 의해 뇌가 깨어나는 '각성(覺醒) 메커니즘'에 이상이 있어 야뇨증이 생길 수도 있다.
2차성 야뇨증은 요도감염이나 비뇨기계 이상, 부모의 이혼이나 사별, 동생의 탄생 등 심리적, 환경적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아이가 소변을 가릴 만큼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너무 다그쳐도 생길 수 있다. 불안장애, 우울증, 지능박약 등 정신질환의 한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동생이 태어나거나 입학, 이사, 친구들과의 갈등, 부모의 이혼이나 죽음, 입원, 수술, 예기치 않은 사고 등 정신ㆍ사회적인 스트레스도 원인이 된다.
▽야뇨증, 학습능력 떨어뜨리고 정신장애 유발
야뇨증 어린이는 또래들과 함께 캠프를 가거나 다른 집에서 잘 때 등의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요즘엔 숙박을 겸하는 어린이 캠프나 수련회 활동이 늘고 있어 야뇨증 어린이와 부모들의 고민은 심각하다. 지난 해 국제학술지 '소아과(Pediatrics)'는 야뇨증 어린이들이 매사에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부산대병원이 1997년 조사한 자료에는 야뇨증 어린이의 44%가 친구들에게서 놀림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과 전문의들은 10세 이후에도 야뇨증이 있는 어린이는 주의가 산만하고 움츠린 태도를 보이는 등 학습능력에도 큰 지장을 받는다고 말한다. 또 신체 발달이 늦고 주의력 결핍, 행동장애, 우울감, 불안감 등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행동요법'과 '약물요법'으로 치료
아이의 정상적인 발달을 위해서는 야뇨증을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사용되는 야뇨증 치료법은 행동요법과 약물요법 등 두 가지. 행동요법은 잠옷에 '야뇨경보기'를 부착, 오줌을 싸면 경보가 울려 잠에서 깨어나게 한다. 이런 방법을 자꾸 반복하면 나중에는 방광에 소변이 차거나 배뇨가 일어나기 전에 스스로 일어나 소변을 보는 습관을 몸에 익히게 된다. 일종의 조건반사를 이용한 치료법이다.
일단 치료에 성공하면 재발률이 적다. 하지만 경보가 울리면 온 가족이 다 깨게 되므로 실제 적용하기가 쉽지 않고 효과를 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밤중에 잠을 깨워 소변을 보게 하는 방법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대부분의 아이가 깨워도 비몽사몽간에 소변을 보기 때문에 훈련효과가 없다고 한다.
좀더 적극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약물요법을 받는 게 좋다. 과거에는 '이미푸라민'이라는 항우울제를 사용했는데, 치료효과가 50% 정도에 불과하고 심혈관 부작용도 있어 요즘은 많이 쓰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밤에 항이뇨 호르몬 분비가 감소해 야뇨증이 생긴다는 사실에 착안, 항이뇨 호르몬제인 '데스모프레신'이 널리 쓰인다. 약 70~80%에서 효과를 나타내며 부작용이 거의 없고 장기처방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저녁식사 후 음료의 섭취를 제한하거나 '야뇨 차트'에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야뇨 차트는 오줌 싼 날과 싸지 않은 날을 구분해 다른 종류의 스티커를 붙이게 한 뒤 오줌 안 싼 날이 며칠 지속되면 칭찬을 하거나 선물을 주는 방법. 야뇨증 어린이의 10%는 이 방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야뇨증은 재발률이 높기 때문에 장기간 약을 먹어야 한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녀가 쉽게 지치지 않도록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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