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뛰는 사람은 잡기 힘들다.조깅화를 신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8㎞를 달리는 한국휴렛패커드㈜의 최준근(48)사장은 'HP의 런닝 슈'로 통한다.
최근 열린 3.1절 기념 단축 마라톤에서 그는 10㎞를 51분만에 완주했다. 또 18일 동아 마라톤에서도 20여㎞를 무난히 달린 최 사장은 달리는 이유에 대해 '그저 의무감'이라고 말하는 마라톤 맨.
1975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한 최 사장은 삼성전자와 HP가 합작 한 후 20여년간 한국HP에서 연구ㆍ영업ㆍ관리직 등을 두루 거치면서 '미스터 HP'가 됐다.
삼성맨에서 '미스터 HP'로 거듭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마라톤을 하듯 성실하고 꾸준하게 어려움을 극복했다. 미국 HP본사 소프트웨어 개발담당에서 한국의 고객지원 본부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력을 착실히 쌓아온 그는 결국 95년 HP의 첫 한국인 CEO로 발탁됐다.
최 사장은 "3명의 전임 외국인 사장들이 국내에 HP 기업문화의 기틀을 잡기위해 노력했다면 내 임무는 한국HP를 더욱 HP다운 회사로 키우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최 사장은 한국HP에 자신의 경영철학이나 주장보다는 HP 정통의 색채가 배이기를 바란다.
그의 일상 생활에서도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 여의도 한국HP 사옥에서 최 사장의 집무실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마케팅부와 일반 사업부서가 촘촘히 붙어있는 22층 한 구석에 자리잡은 2평 남짓한 그의 사무공간은 격식파괴의 전형으로 꼽힌다.
일반 직원들과그를 차단하는 물리적인 벽도, 정신적인 벽도 없기 때문이다. 사장실에 들어가기 위해 노크할 문 조차 없다. 문이 없는 사장실이야말로 'HP방식'의 수평적 조직체계를 대표할만한 사례다. HP는 지난해 고객 관점에서 보다 더 편리한 조직으로 탈 바꿈 하기 위해 내부 수술을 단행했다.
주고객인 기업과 일반고객을 개별적으로 나눠 담당 사업본부를 만들고 이들을 직접 이어주는 각종 컨설팅, 기술개발, 영업, 교육 사업부 등 지원부서도 만들었다.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보다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대처하기위한 조직 개편이다.
"정보통신(IT)이란 것이 일상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건 바로 실패한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고객들의 생활 속에서 이뤄지고 이용될 수 있어야만 진정한 가치를 가진 정보통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사장은 고객의 입장이 120% 반영되는 것이 바로 정보통신의 가치창출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매출 1조5,300억원을 달성한 한국HP는 최 사장 취임이래 지난 5년간 국내 1,000대 기업 중 IT분야 외국투자기업 매출랭킹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최 사장은 "정보통신 업계도 이젠 기술을 뛰어넘어 고객의 일상 생활 속을 파고드는 'e- 서비스'정신이 없이는 경쟁력을 지켜나가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휴렛팩커드㈜ 최준근 사장
1953년 경남 진주출생
경남 진주고 졸(1971)/ 부산대 전기공학과 졸(1976)/ 미국 하버드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1998)
삼성그룹 공채 입사(1975)/ HP S/W연구소 S/W 개발업무/ 삼성HP S/W 개발담당 차장/ 삼성HP 고객지원본부장 이사/ 한국HP 관리본부장 상무/ 한국HP 대표이사 사장 취임(1995.10)
전경련 국제기업위원회장/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미국상공회의소 위원/ 한국소프트웨어 컴포넌트 컨소시엄 부회장
joon-keun_choi@hp.com
●한국 휴렛패커드
1939년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한 차고에서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에 의해 출발한 휴렛패커드(HP)는 오늘 날 팔로알토의 실리콘밸리가 있게 한 시조 기업으로도 불린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가진 HP는 현재 실리콘밸리 매출액 1위이자 포천지가 아홉 차례에 걸쳐 컴퓨터 부문 최우수업체 1위로 선정한 선진기업이다.
전세계 120여 개국에 600개의 사무 망을 갖춘 HP는 컴퓨터를 비롯 주변기기, 네트워크 제품 등 2만5,000여 종에 달하는 첨단정보통신 제품군을 제조ㆍ판매하고 있다. 2000년엔 매출액 총 488억 달러를 달성했고 현재 직원 수는 8만8,500여명. 특히 레이저ㆍ잉크젯 프린터 세계 1위, RISC/UNLX 컴퓨터 시스템 세계 1위, PC업계 세계 2위로 컴퓨터 관련 첨단제품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HP는 1984년 휴렛팩커드(55%)와 삼성전자(45%)가 81억원을 합작투자하면서 첫 발을 디뎠다. HP는 96년 80억원을 증자, 총자본금 161억원으로 연 평균 30%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했다.
HP는 98년 5월에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인수함으로써 단독법인으로 거듭났다. 수년간 국내 정보통신(IT)분야 외국투자기업 매출랭킹 1위를 차지한 한국HP는 수출도 연평균 15억 달러를 기록했다.
대표적 수출품목으로는 PC모니터와 TFT-LCD, D램 반도체 등. 98년 김대중 대통령은 방미 중 당시 국내에 3억7,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매년 11억 달러 이상의 전자제품을 구입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HP본사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HP는 최근 21세기를 위한 전략으로 인터넷사업을 위한 'e-서비스'에 초점을 둘 것을 발표하고 HP의 '재창조'를 선언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My 키워드
◈ 고객의 목소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경청하라.
고객지원본부장을 지낸 최 사장의 첫번째 오전 일과는 홈페이지에 뜬 고객불만 사항을 살피는 것이다.
하루 평균 10~20개 정도인 고객불만 사항을 챙겨 담당자에게 개선방안을 묻고 해결책을 찾아준 후 다음 업무에 들어간다.
"고객이 홈페이지에 고충을 직접 올릴 만큼 화가 날 정도라면 회사의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고객의 목소리는 바로 우리가 이룬 일에 대한 성과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한 달에 2,3번씩은 용산 전자상가를 찾아 자사제품에 대한 판매현황과 가격, 진열대 배치 등을 점검하면서 소비자들과의 거리 좁히기에 최선을 다한다.
◈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 관리하며 스스로 평가하라.
"CEO의 역할은 개개인을 존중해 개인이 능력을 최대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다.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일하고 또 한 일에 대해 평가를 받다 보면 고과권을 쥔 윗사람만 쳐다보며 일하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관리하며 스스로 이를 평가하는 자율관리가 이뤄진다면 직장 만족도는 한층 개선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깨어있는 조직운영 방식이다."
◈ 원칙을 지켜라.
최 사장은 원칙에서 벗어난 창의성은 있을 수 없음을 조직운영의 신조로 삼는다. 그는 사장이 없더라도 원칙과 확고한 조직체계에 따라 회사가 차질 없이 굴러 갈 수 있을 만큼 구심점이 개인보다는 시스템에 근거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한잔을 마시며
● 북한 개성공단에 대한 사회간접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데.
"아직 이뤄진 것은 없다. 미국 본사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 투자를 검토 연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본사에서 북한 개성공단에 대한 자료를 요청해와 공개된 자료만을 보냈다. 아마 회사 개별적인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보다 적합할 것이다."
● 올해 경기전망이 엇갈리고 있는데.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본사 칼리 피오리나 회장이 이와 유사한 질문을 했다.
난 한국경제가 미국경기에 의존하고 있어 미국경기의 변수를 지적했다. 그러자 피오리나 회장은 대뜸 '미국경제를 아무도 모르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웃으며 얘기한 적이 있다.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미국 본사에도 구조조정 바람이 세게 불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마케팅 인력을 충원할 계획이다. 올 하반기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 최근 다시 출시한 홈PC 파빌리온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
"HP 제품의 장점은 기술력을 앞세운 제품과 철저한 서비스에 있다고 본다. 3ㆍ4월 집중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강화해 국내시장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급인 HP 홈 PC제품의 명예를 회복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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