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의 경착륙 가능성과 주가폭락, 일본의 복합불황과 금융위기 우려 등 대외 경제여건이 악화되자 재계가 긴축 고삐를 바짝 죄며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기업들은 우선 급격한 환율변동에 따른 외환리스크 관리에 치중하면서 각종 비용지출과 투자를 줄여 현금 유동성을 높이고, 위기관리에 치중한 방어적 경영과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강화를 서두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전자업계는 미국 경기 하강으로 미국 시장에서 PC 등 IT(정보통신) 분야 제품 판매가 위축될 것으로 판단, 연초 세웠던 경영계획을 재조정하고 있다.
또 엔화 약세로 유럽, 동남아 등 주요 수출시장에서 일본과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총력체제에 돌입했다.
■비상경영계획 마련
삼성전자는 올해 7조7,000억원으로 예정된 투자규모를 1조2,000억원 가량 줄이고 반도체 제조원가를 20~30% 낮추는 내용의 비상경영계획을 마련, 이달 말 사장단회의에서 확정할 예정이다.
해외법인관리팀 최한영 차장은 "수출 비중이 70%에 달하기 때문에 엔화약세로 올해 수출이 지난해 4ㆍ4분기 보다 7% 이상 감소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이달 들어 동남아 생산법인 등에 재고 축소를 통한 리스크 관리 방안을 내려보냈다"고 말했다.
■해외마케팅 강화
LG전자 는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달러 중심의 환관리체계를 유로화 등 현지화 중심으로 바꾼데 이어 각 사업본부별로 해외영업담당팀을 재정비하고 중국과 유럽 현지법인 책임자를 새로 임명하는 등 해외마케팅을 강화했다.
이시용 경영기획부장은 "이달 7일 열린 사업전략회의에서 승부사업인 PDP(벽걸이형)TV 등에만 설비투자를 집중하고 현금 유동성 확보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며 "이미 미국 수출비상이 걸린 IT분야는 비상경영 100일 작전을 선포하고 현지에 거의 상주하며 하루하루 매출과 현금흐름을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용최소화
주요 수출시장인 동남아 국가와 중국, 미국 등에서 일본업체와 경쟁하고 있는 포항제철은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감소를 우려하면서 판매 생산 투자 등 전부문에 걸친 사업계획을 이달 말까지 재수립한다는 방침을 갖고 초 긴축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포철 종합기획팀 조천명 과장은 "미국과 일본의 경기추세를 면밀히 검토하고 전사차원에서 원가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한 모든 노력을 강구하고 비용지출은 우선순위와 완급을 가려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규투자유보
경기 악화에 대비해 올 초 계열사별로 '시나리오 경영'체제를 도입했던 SK는 대외변수 악화에 따라 이를 속속 실행에 옮기고 있다.
SK㈜는 안정적인 현금창출이 필요하다고 보고 신규 주력사업인 바이오 산업 외에는 모든 투자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15억달러 규모의 원유도입 결재비용 때문에 달러 환율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다른 정유업체도 사내 선물환제도 등 헤지(위험회피)기법을 활용하는 등 환차손을 최소화하는 데 부심하고있다.
■ 수출다변화
올해 일본시장 진출을 시작한 현대자동차는 5,000대 판매 목표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면서, 미ㆍ일 시장보다 환율이 안정된 유럽시장의 수출비중을 늘리고 미국ㆍ유럽의 현지공장 설립 및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
기획총괄본부 이대창 이사는 "미국 시장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브랜드가치 향상과 신모델 투입, 마케팅 강화 등으로 올 수출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며 "해외여건 변화가 국내 환율변동에 따른 물가상승과 소비위축으로 이어져 내수 침체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기 도입 등 외화부채가 많은 대한항공은 환리스크 부담이 크지자 재무본부 안에 5명의 전문 관리팀을 만들어 환율급변에 따른 위험관리를 강화했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선임연구원은 "미국ㆍ일본의 경제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해외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당장 한국내 투자금을 회수할 우려는 그리 높지 않지만 이들 시장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수출선 다변화를 통한 체질개선과 리스크 관리, 현금유동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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