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많은 자랑할 것들을 갖고 있는 나라다. 작은 국토에 오목조목 볼 것이 많고, 예의바르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가족간의 사랑이 매우 두텁고, 어려운 사람들을 서로 돕고자 하는 인정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나는 여기서 정확히 말해 2년반 동안 매우 행복한 체류생활을 했다. 이달말이면 제2의 고향나라가 되어버린 정든 한국을 떠나야 한다.
가족을 남겨둔 채 떠나야 하는 아내의 서운함은 더 말할 나위 없겠지만 나 또한 한국가족들, 친구들과 헤어질 순간에 느껴야 할 허전함과 아쉬움은 미리 상상해 보기조차 싫다.
특히 내겐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을 느끼게 한 미소들이 있다. 난생 처음 본 온돌을 나는 너무 좋아한 나머지 늘 집에서 바닥생활을 고집했었다.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바둑을 두거나.. 그리고 6개월후 99년 어느날 드디어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갑자기 돌아눕지도, 일어나 앉을 수도 없게 허리병이 났던 것이다.
결국 119에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계단을 갖춘 3층 빌라에 사는 나를, 키가 꽤 큰 내 체구에 허리를 굽히지 않고 반드시 누운 나를 들것에 실어 앰블런스까지 조심스레 실어나르며 아프지 않냐고 연신 묻는 119 구조대 아저씨들의 땀 흘리던 얼굴은 잊을 수 없다.
병원까지 그들은 매우 친절하게 운송해 주었고 병원침대에 오를 때까지 마치 가족처럼 걱정해 주셨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정'(모국어로 번역이 안되는 고유한 한국인들만의 감정을 나타내는 이 말을 나는 사랑한다)은 단순히 직업정신에서 나오는 것 이상의 마음임을 나는 안다.
이젠 낯선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한 험담을 하면 나도 모르게 한국의 장점을 내세우며 두둔하곤 한다. 그러나 또한 자기 스스로 비평할 줄 알아야만 발전이 있다.
내게 비친 한국인들은 마음이 여리고 특히 다른 사람이 자기의 단점을 얘기하는 데 대해 매우 약하고 민감하다.
객관적으로 반성하며 수용하지 못하고 금방 어머니께 꾸지람을 들은 어린이 표정으로 속상해 한다. 비평이란 잘못된 것에 대한 지적이지 영원한 결점을 못박는 결정적 타격이 아니다.
한여름 무더위 속 북한산 계곡에 발 담그고 수박 먹을 수 있는 멋들어진 도시가 서울이지만 걷는 자에게는 가장 괴로운 도시 중 하나가 바로 또 서울이다.
무수한 지하도와 인도를 규칙없이 막고 있는 노점상과 포장마차들, 동네에서 빵빵거리며 등뒤로 달려오는 차들과 배달 오토바이의 폭주속에 편한 산책은 불가능하다.
유교적 전통에 따라 위 아래 사람의 예절이 엄격한 것은 미풍양속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는 '계급적 말투'는 한국에 정이 많은 나도 받아 들이기가 쉽지않다.
용역직에 종사하는 사람들(파출부, 수위, 기사, 비서 등)에게 고용주들은, 심지어 나이어린 사람들도 비어에 가까운 반말을 하고, 이에 대해 '아랫사람'은 존대를 하는 것이 당연시됨을 보면 '인격'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공익광고나 전철역에서 '줄을 섭시다'라는 문구를 자주 본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이러한 기본적인 것에 대한 국민계몽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좁은 화장실 통로나 좌석버스 정류장, 아슬아슬한 지하철 역 플랫폼에서 통행을 방해하면서까지 줄을 꼭 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줄, 즉 양심껏 다른 사람들을 밀치고 방해하면서까지 자신을 먼저 내세우지 않으려는 그 타인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다음에 내가 한국에 오게 될 때는 거주자가 아닌 여행객일 것이고, 그때는 한국의 아름다운 면만을 보기에도 내게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한국만세!!
화브리스 고띠에ㆍ파리 10대학 지리학 박사과정 연세대 한국어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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