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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자연사 박물관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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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자연사 박물관 짓자

입력
2001.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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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밀레니엄말에 세계적인 석학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우리 인류가 당면한 위기들 중 가장 심각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 시대의 석학들은 한결같이 생물다양성의 고갈을 들었다.물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1989년 세계자연보호재단은 생물다양성을 "수백만여 종의 동식물, 미생물, 그들이 담고 있는 유전자, 그리고 그들의 환경을 구성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생태계 등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풍요로움"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생물다양성은 대체로 유전자다양성, 종다양성, 그리고 생태계다양성으로 나눈다. 종은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생물다양성의 단위이다.

세계 각국이 모두 열대우림 보존에 동참하는 이유는 그 곳에 특별히 많은 종들이 집결되어 있고 그로 인해 지구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생태계는 특정한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의 집합인 '군집'과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온도, 습도, 강수량, 풍속 등 모든 물리적 환경요인들을 포함한다.

구조적으로 보다 다양한 생태계가 그렇지 못한 생태계보다 더 큰 종다양성과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세계는 바야흐로 그린경제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경제대국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세계 경제에 환경부국들의 입김이 점차 강해질 것이라는 추측이다.

환경빈국의 제품들이 국제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하면 국제기후협약의 협정에 따라 한 국가의 산업구조 전체가 흔들릴 즈음이다. 이 같은 변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우리 나라의 촛불이 꺼질 듯 꺼질 듯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그 촛불을 안전하게 지켜줄 든든한 바람막이가 없다는 현실이 우리의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전통적인 경제대국들과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환경부국들은 모두 필수적으로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에는 없는 것이 바로 국립자연사박물관이다.

황금알을 낳는다는 생명공학시장은 이미 정보통신시장의 규모와 맞먹으며 향후 엄청난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그 시장이 바로 자연사박물관 위에 열린다는 사실을 아는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자연사박물관을 그저 죽은 동식물들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자연사박물관이 첨단 연구의 메카이자 미래 산업의 산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외국을 여행할 때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가 세계 굴지의 자연사박물관들이다.

하지만 그런 박물관에서 '외국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본 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문안에 '진짜'박물관이 있다.

박물관학에서는 그곳을'속박물관'이라 부른다. 박물관에는 일반 대중을 위한 전시와 교육을 담당하는 이른바 '겉박물관'과 연구 및 전문가 양성을 위한 '속박물관'이 있다.

겉박물관을 멋있고 화려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야 사람들이 계속 박물관을 찾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속박물관이 튼튼하지 않고는 절대로 훌륭한 겉박물관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교육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전시는 전시관을 만드는 목공의 손이 아니라 속박물관 연구진의 머리에서 나온다.

세계 일류의 전시를 원한다면 우선 세계 일류의 연구진과 시설을 갖춰야 한다.

훌륭한 자연사박물관은 단순히 표본만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표본들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도 보관해야 한다.

동물표본의 경우를 예로 들면, 표본 외에도 그 동물이 만든 둥지나 거미줄, 발자국은 물론 그들이 내는 소리와 행동에 관한 모든 기록도 보관하고 관리해야 한다.

생물자원의 소유권이 국제분쟁의 첨예한 안건으로 등장한 요즈음 바로 그 핵심인 유전자원의 연구와 관리를 총괄할 수 있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국립자연사박물관에는 분류학, 생태학, 행동학, 지질학, 인류학 등 진화생물학 계통은 물론 최첨단 유전자과학에 필요한 온갖 장비와 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미국의 스미스소니언과 아메리칸 박물관, 그리고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국립박물관 등 세계 제일의 자연사박물관들은 모두 가지런히 정돈된 표본장들과 함께 최신의 분석과학 장비도 갖추고 있는 말하자면 최첨단 과학연구소들이다.

국립자연사박물관 옆에 야생동물 사육장, 수족관, 곤충관, 수목원 등을 설치하여 살아 있는 생물의 관찰과 실험을 할 수 있게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자연사박물관이 가지는 학문과 환경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 경제적 가치 또한 엄청나다.

우리 나라도 곧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어 삶의 질이 중요한 시대가 되면 국립자연사박물관이 국민 여가활동의 질적 향상에 기여할 경제적 가치는 정량화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더욱이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은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형성될 국제시장의 경쟁력이 바로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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