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행위인가, 외국계은행에 대한 경영 간섭인가.'제일은행의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비판을 받아가며 뉴브리지캐피털에 은행 지분 51%를 매각한데 이어 경영도 윌프레드 호리에 행장에게 전적으로 맡기다시피 했던 정부와 예금보험공사가 임원 스톡옵션 문제는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당초 16일 주주총회를 열어 스톡옵션 부여안을 처리하려던 제일은행은 주총 직전인 15일 밤 '주총 무기 연기'를 발표하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제일은행 관계자는 18일 "스톡옵션을 강행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스톡옵션 가격은 금융감독원과 협의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은행은 현재 법무법인 김&장법률사무소 등과 후속 대책을 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보 왜 뒤늦게 문제삼나
제일은행은 지난해 3월 15일 이사회를 열어 호리에 행장 등 집행임원 5명과 사외이사 11명에게 527만3,217주의 스톡옵션(주당 5,077원)을 부여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총주식의 2.67%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안은 보름 뒤 열린 30일 주주총회에서 통과됐다.
제일은행은 이어 올해 60만3,665주의 주식을 임원들에게 스톡옵션(주당 6,434원)으로 추가 부여키로 하고 16일 주주총회를 소집했었다.
그러나 예보는 지난해 9월 개정된 증권거래법 시행령의 '거래 정지된 상장법인의 스톡옵션 가격은 금융감독원이 자산 상태, 수익성 등을 감안해 정하는 가격 또는 액면가 중 높은 가격을 택한다'는 규정을 들어 반대하고 있는 것.
예보는 특히 올해 스톡옵션은 물론 지난해 부과된 것도 불법적인 것이므로 취소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승희(朴承熙) 예보 이사는 "이사회가 열렸던 날인 지난해 3월 15일 증권거래법 시행 규칙이 개정됐다는 사실을 1년이 지난 최근 법률적 문제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규칙은 거래 정지된 상장법인의 경우 증권거래법 시행령 84조(스톡옵션가격 금감위 산정)를 준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난해 부여된 스톡옵션도 무효라는 것이다.
■ 제일은행 버티기?
'선진 은행 경영'을 표방하면서 이미지 쇄신을 추구해 온 제일은행은 최근 스톡옵션 문제가 불거지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제일은행의 한 임원은 "제일은행의 스톡옵션은 이미 정부와 뉴브리지캐피털간의 계약에 따른 것으로, 마치 임원진이 스톡옵션만을 노리고 일하는 것처럼 비쳐져 답답하다"고 말했다.
1999년말 정부와 뉴브리지측이 맺은 제일은행 매각 본계약서에 따르면 제일은행 경영진은 총주식의 5% 범위 내에서 스톡옵션을 부여받되, 정부는 추후 총주식의 5% 내에서 신주인수권을 갖도록 돼 있다.
제일은행 경영진은 기존 스톡옵션 외에 앞으로도 400만주 가량의 스톡옵션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논란의 초점은 스톡옵션 가격산정 기준인 셈이다.
제일은행 스톡옵션 처리문제에 대해서는 법조계에서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함준표(咸俊杓) 변호사는 "올해 사안은 제일은행이 불리하지만, 지난해 사안은 당시 개정된 법규가 강행적 성격을 띠고 있는지 아니면 권고적 성격을 띠고 있는지 해석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 제일은행 경영진을 괴롭히는 것은 여론이다. 최근 스톡옵션 논란이 지속되면서 '10조원 규모의 혈세가 투입된 은행이 경영진의 '지갑'이냐"는 등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제일은행이 스톡옵션 취소를 결정하면 모든 상황은 원점으로 되돌려지게 된다. 3~4년 후 많게는 수백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을 가능성이 수포로 돌아가는 셈.
'대의명분을 위해 스톡옵션 문제를 원점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정부ㆍ여론과의 투쟁을 선언할 것인가.' 호리에 행장의 선택이 주목되고 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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