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의 기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이국 땅으로 도망치듯 유학을 떠나도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장년에 접어들어도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가슴에 새겨진 악몽은 낙인처럼 선명하게 남는다.특별법 제정 등 튼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워지지 않는 낙인 학교폭력
"다른 사람에게 멸시당하는 모든 잘못이 내 팔과 다리에 모여있다. "
지난해 10월 일시 귀국한 미국 유학생 이모(19)군은 집에서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팔과 다리를 마구 자해하다 갑자기 3층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중상을 입은 이군은 병원 중환자실로 호송됐으나 치료를 거부해 미국으로 호송됐다.
'한국남자=때리려는 사람'이란 환각 때문에 의사를 보고도 발작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군은 3년전인 고교2학년때 동급생들의 상습적인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착란을 일으켰다가 병세가 좋아진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대학까지 진학했다.
이군의 아버지(51)는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잘하기에 너무나 기뻤는데 돌아오자 마자 또 발작했다"며 "학교폭력은 천형보다 무섭다"고 치를 떨었다.
■자살 정신착란 등 후유증 심각
지난 99년 서울 H고 1학년이던 송모(17)군. 당시 10여명의 동급생들에게 수개월간 집단 따돌림과 폭행을 다했던 악몽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같은 해 11월 사실이 교사와 학부모에게 알려지면서 괴롭힘은 일단락됐지만 송군은 이때부터 또 다른 고통의 터널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애써 감춰왔던 사실이 공개되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송군은 가출을 시도했고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온 뒤에도 심각한 불안증세를 떨치지 못하다 결국 정신병원을 찾았다.
2개월여의 입원 치료를 거쳐 새 희망을 갖고 재 입학한 학교 생활도 잠시, 학기시작 10여일만에 다시 가출하고 말았다.
"선생님이 다른 아이를 때려도 마치 내가 맞는 것 같아서"가 학교 포기 이유다.
이후 고단한 투병생활이 반복됐다.
장기간 정신병원에 입원만 3차례, 스트레스로 인한 합병증으로 목 수술을 받았는가 하면 신경안정제 과다복용으로 길거리에서 쓰러진 적도 있었다.
송군의 정신착란으로 집안분위기가 황폐해지고 치료비가 늘어나면서 송군 부모의 금슬도 금이 갔고 급기야 이혼까지 고려하는 등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 공포감과 적개심에 불타는 피해자들
지난해 경험한 학교폭력의 후유증으로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모(15.당시 충북 N중 2년)군은 요즘도 '교복 입은 학생'이 두려워 집앞 가게조차 혼자 나가지 못한다.
이군의 어머니(40)는 "컴퓨터를 좋아하던 아이가 피해를 겪으면서 '법을 공부해 복수하겠다'는 말만 자주 되풀이 한다" 며 "이사를 계획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겨우 자리잡은 사업은 어떻게 하느냐"며 한숨지었다.
고교시절 폭력과 악성루머에 시달렸던 '청소년 폭력추방을 위한 네티즌연합'부운영자 이루키(25.여.본명 김성애)씨는 "상사의 사소한 지적마저 견딜 수 없어 다니던 건축회사를 4개월만에 그만두고 말았다"며 "피해자 대부분이 지속적인 악몽, 과민반응 등에 시달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시스템적 처방이 필요하다
지난1월 서울대 의대 조수철(정신과)교수팀이 서울시내 16개 중학교 학생 2,2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학교 내 집단 따돌림 피해자의 약 30%가 정신질환 징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학생들이 보인 정신질환 징후(2%)보다 무려 15배나 높다.
극단적인 교내폭력을 당한 희생자들이 정신질환에 빠질 가능성은 집단 따돌림 피해자의 정신질환 징후(30%)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김정호기자.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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