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특별하다. 그러므로 특별하게 키워야 한다."고급 승용차와 고급 브랜드의 옷이 어른들의 사회적ㆍ경제적 지위를 결정짓는다면 아이들은? 사립유치원의 입학경쟁과 외국인이 가르치는 영어 유치원 열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아예 태어나는 장면부터 CD롬으로 제작하고 유료 육아 사이트와 멤버십 클럽에 가입하는가 하면, 명품 베이비 브랜드도 늘고 있다. 프리미엄급,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귀족 육아' 현상이 갈수록 보편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현이가 아토피(태열) 기운이 있어서 늘 걱정이었는데, 얼마전 독일제 직수입품 세라메드 라인으로 바꿨어요. 남들은 기분 문제라지만 써보니까 좋아요." 회사원 김희진(32)씨는 최근 세 살 배기 딸의 스킨케어 제품을 수입품으로 바꿨다. 비누 스킨 등 풀세트가 11만 2,000원으로 보통 제품들보다 2배 이상 비싸지만 "의학적으로 제대로 검증 받은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유아식도 남달랐다. 씨밀락 같은 외제 등 좋다고 알려진 것은 일일이 시도해 보았다. 유아식 인터넷 판매 사이트 '아기밥'(www.agibob.co.kr)을 통해서 맞춤 형태의 유아식도 먹였다. 한 달에 20만~30만원 정도가 들었다.
육아 '멤버스 클럽'을 지향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등장했다. 3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노블베이비(www.noblebabyn.com)는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가입비 2만원과 연회비 6만원을 내야 한다. 500명 가량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은실 이사는 "회원들 중 압구정동, 청담동 등 서울 강남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많고, 디자이너 등 전문직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이들은 값비싸더라도 다른 육아 사이트와는 차별적인 서비스를 선호한다. 탯줄혈액 보관 서비스, 자녀의 성장과정을 담은 CD, 백일이나 돌 등에 입힐 드레스 등. 의식주의 차원을 넘어섰다.
먼 장래를 대비한 탯줄혈액 보관도 산모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소아암 등 난치병 치료에 쓰기 위해 출산 시 버려지는 탯줄 태반의 혈액을 보관하는 것이다. 연간 보관료 15만원에 등록비, 처치비 등을 포함해 10년 보관하는 데 약 200만원으로 만만찮은 비용인데도 업체 '라이프코드'에는 월 70~80명이 신청한다. '메디포스트'는 4월까지 특별행사 기간으로 95만원에 10년을 보관해 준다. 올 2월 아들을 출산하면서 탯줄혈액은행을 이용한 서정아(30ㆍ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씨는 "결혼 4년 만에 인공수정을 통해 힘들게 가진 아이여서 만일에 대비하고 싶었다"며 "95만원이 별로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베이비 디올' '구찌 베이비 컬렉션' '영 베르사체' 등 해외 수입 명품의 베이비ㆍ주니어 브랜드에 대한 인기도 놓아지고 있다.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찾아 입히거나 외국 여행에서 사 오기 때문이다. 수입 아동복을 판매하는 청담동 '쁘띠 슈'를 운영하는 문지현씨는 "고객들 중 브랜드를 먼저 알아보고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교육'에 대한 관심도 더욱 조기화하고 있다. '프뢰벨 은물 어때요? 제품 설명을 들으면 욕심이 나는데' '몬테소리 어떤가요?' 같은 질문은 육아 커뮤니티 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 질문들. 아이의 정서발달에 좋다면 70만원 대에 달하는 몬테소리나 프뢰벨 같은 고급 교재도 기꺼이 선택한다.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영어교육도 마찬가지. 서울 강남ㆍ서초 지역과 경기 성남시 분당 등에는 디스커버리, 키즈 헤럴드, 키즈 클럽 같은 고급 영어 유치원이 많다. 제대로 된 영어교육을 원하는 부모들은 평범한 어린이 영어 학원보다 월등하게 높은 교육비도 결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귀족 육아'는 꼭 돈 있는 사람들만의 잔치는 아니다. 그보다는 한 자녀만 갖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아이에 쏟는 열정이 커지고 있는 것이 첫번째 이유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11월 자사 카드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해 외동딸을 둔 집이 두 자녀를 키우는 집보다 오히려 소비성향이 높다는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자녀 수에 따른 월 구매액은 외동딸-외동아들-딸 둘-아들 둘의 순서로 많아 오히려 소비 단가가 역전되는 경향마저 보였다. '하나밖에 없는 내 아이'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말해 주는 조사 결과다.
또 전문직에 종사하고 수입도 안정적인 여성들이 '신세대 엄마층'으로 자리잡으며 고급 육아에 관심을 쏟고 있다. 신상품, 패션유행, 해외여행 등을 즐기게 된 엄마들은 "아이들에게도 이 모든 것을 함께 누리도록 기회를 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넓은 세계, 고급문화를 향유하도록 하고 싶은 욕심이다.
'귀족 육아'. 치맛바람의 2000년 버전일까, 또는 가족중심주의의 한 단면일까?
김희원기자 hee@hk.co.kr
■수입 명품은 아이와 함께?
수입 명품은 아이와 함께?. '폴로 보이즈'나 '휠라 키즈', '베네통 201', '레고 키즈' 등 캐주얼 패밀리룩쯤이 아니다. 유명 수입명품 브랜드들이 잇달아 베이비ㆍ주니어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겐조의 아동복 '정글 겐조', 모스키노의 '모스키노 키즈', 미소니의 '미소니 키즈' 등이 지난해 백화점에 입점했고 구찌와 프라다는 청담동 직영 매장에서 갓난아기용 슈즈를 판매한다.
구찌는 올 겨울 밍크 캡슐 옷, 가죽 트리밍의 재킷, 모자와 기저귀가방까지 베이비 컬렉션을 모두 들여 올 예정이다. '영 베르사체'와 'DKNY 키즈'도 곧 수입될 예정. 이러한 서브 브랜드들은 본래의 어른 옷이나 신발과 그 디자인이 똑 같은 축소판이다.
아동용 골프웨어도 들어와 있다. 골프 전문 브랜드에서 나온 '아놀드 파마 주니어'다.
5개월째 골프를 배우고 있는 신동주(초등 4)군의 어머니는 "어른용 골프웨어처럼 기능성을 갖춰 연습 때 땀에 젖지 않기 때문에 전문 골프웨어를 입힌다"고 말했다.
조기 골프교육 바람의 결과다. 물론 아직은 어른과 마찬가지로 고급 일상 캐주얼로 입는 이들이 많다.
서울 청담동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유ㆍ아동복을 수입해 판매하는 고급 편집매장도 인기다. '사과 반쪽', '쁘띠 슈' 등 매장은 월간지 등에 나온 기사를 보고 지방에서부터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이 곳은 백화점에 입점한 명품 브랜드보다는 아무래도 가격이 낮기 때문에 "생각보다 싸다"며 반기는 손님들이 많다. 명품 브랜드의 경우 원피스류가 가장 비싸 50만원대까지 한다.
현대백화점 유아동복 담당 바이어 권태진 과장은 "수입브랜드의 공략에 국내 브랜드들도 성인복 수입소재를 쓰는 등 고가 전략을 펴고 있어 아동복의 고급화 추세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탤런트 황신혜가 딸과 함께 화보를 촬영해 화제가 된 '모크 베이비'도 수입 브랜드 못지 않은 가격을 내 걸고 고급 브랜드를 표방하고 있다.
"쑥쑥 크는 아이한테 돈을 왜 낭비하냐"고? 요즘 엄마들 생각은 이렇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입히겠어요?"
■"제대로 키우기위해" 한자녀 만족
부모가 자녀에게 아낌없이 물질적, 정신적 정성을 쏟을 수 있는 것은 자녀수가 감소한 것이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사교육비가 증가하는 등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나는 것도 아이를 적게 낳는 원인이 된다.
근대화 이전 전통 농업 사회에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자기 먹을 것은 타고 난다'며 많이 낳던 때와는 다르다. 여성이 가임 기간 동안 출산하는 아이의 수를 평균한 합계출산율은 1970년에 4.53명에서 1999년 1.42명으로 줄었다. 1980년에는 2.83명이었으나 1990년에는 1.59명으로 감소하며 90년대에는 1명 대를 유지했다. 가구당 자녀가 1명 혹은 2명 꼴이다.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어린이집 등 현장에서 보면 외동아이들이 다른 또래보다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서울시 보육정보센터 김혜경 소장은 그러나 "젊은 엄마들은 '하나라도 제대로 키우고 보자'는 생각에서 외동아이로 만족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유학을 보내거나 아이에게 투자하고 싶어도 자녀가 둘 이상이 되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필요한 것들을 맘껏 해주지 못한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키우는' 방법을 아는 부모는 많지 않다. 어떤 것이 아이에게 좋은지를 판단할 기준, 정보가 없는 부모로서는 값비싼 교재, 학원, 먹거리 등에 의존하게 된다. 고급 브랜드의 권위를 믿고 기대는 것이다.
김 소장은 "고급 영어 유치원들 가운데도 유아교육을 전공한 교사가 부족하고 놀이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도 많다"며 "영어를 배울지는 모르지만 유아기에 맞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고급화가 곧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지름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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