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인가? 올해 같으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봄을 맞으러 대자연에 나가고 싶지만 유난스러운 날씨가 발길을 주춤하게 한다.아직 바람이 겁난다면 봄맞이 드라이브는 어떨까. 차창 밖에 펼쳐지는 봄의 숨결이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마음을 따스하게 풀어줄 터이다.
■정선 종량동 가는 길(강원 정선군 북면)
정선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완행열차 비둘기호가 다닌다. 정선읍과 북면 구절리를 왕복하는데 달랑 객차 하나만을 매달고 다닌다.
학생들의 통학을 위한 이 열차는 이제 관광상품으로 부상해 주말이면 관광객 차지가 되고 만다. 산골마을 구절리는 그 덕에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열차를 탄 사람들은 구절리역까지만 기억한다. 사실 구절리의 속살은 그 안쪽에 숨겨져 있다.
구절리로 진입하는 길은 '정선 아라리(아리랑)'의 발상지로 유명한 아우라지에서 시작된다.
정선읍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여량쪽으로 달리다 보면 여량 1교 직전에 왼쪽으로 주유소가 있고 '아우라지 관광농원'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약 8㎞ 정도 직진하면 구절리역이 나온다. 구절리역에서 일반 승용차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은 약 3㎞ 남짓.
노추산 아랫마을인 종량동까지이다. 짧은 길이지만 강원도 산비탈의 계곡미를 집약적으로 느낄 수 있다. 오장폭포와 송천이 그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구절리역에서 약 1.5㎞ 지점에 위치한 오장폭포는 하늘에서 바로 떨어지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주는 폭포. 오장산 자락을 흐르던 물이 갑자기 100㎙에 가까운 돌벼랑을 만나 수직으로 떨어진다.
길에 차를 대놓고 그냥 바라볼 수 있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송천은 기암을 끼고 흐른다. 석회암 성분이 많은 때문인지 바닥이 하얗다.
하얀 바닥 위를 흐르는 물은 푸른색이 짙다. '크리스털 블루'이다. 봄이 깊어지면 냇물 양쪽 언덕으로 진달래가 핀다. 푸른색과 분홍색의 대비가 볼 만하다.
아쉽지만 일반 승용차는 종량동에서 차를 돌려야 한다. 길은 강릉까지 이어지지만 험한 비포장길이다. 4륜 구동차에 노련한 운전솜씨가 뒷받침돼야 주파할 수 있다.
■태백-삼척 38번 국도
강원 태백시는 해발 800㎙인 고산지대에 있다. 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이지만 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그 중에서도 삼척시로 내려가는 38번 국도는 고불고불하기가 대관령에 못지 않다. 약 40.5㎞. 그리 길지 않지만 1시간이 족히 걸린다.
본격적인 드라이브 코스는 태백시 통리의 연화우체국에서 시작한다. 길은 스키선수가 활강을 시작할 때처럼 가장 높은 곳에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내려다 본다.
도계읍까지 10㎞는 숙련 스키어가 선택하는 고난도 활강코스. 심한 회전을 반복하며 가파른 언덕을 내려간다.
오른쪽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협곡인 통리 협곡이 거대한 입구를 들이밀고 있다. 협곡 속에는 미인폭포가 숨어 있다. 협곡 아래로 황폐함을 느낄 수 있는 폐광의 잔재들이 펼쳐진다.
도계에서 삼척까지는 구불구불한 크로스 컨트리 코스. 언덕이 갑자기 완만해진다. 이 길은 두 친구와 만난다. 오십천과 영동선 철도이다. 오십천은 한 때 먹물이 흐르던 강.
그러나 이제는 제 색깔을 완전히 되찾았다. 도계읍 인근에서만 탁하게 흐르다가 자체 정화작용을 거친 중하류에서는 설악산 백담계곡 만큼이나 맑은 물빛을 자랑한다. 아직 지류는 얼음이 끼었고 몸을 푼 본류는 장하게 흘러간다.
운이 좋다면 영동선 철도를 달리는 열차를 볼 수 있다. 도계역에서 함께 출발을 했다면 굽이굽이 오십천을 수십 차례 건너며 삼척까지 계속 함께 한다.
산 뒤로 혹은 터널 속으로 숨었던 열차와 다시 만나는 기쁨. 아기자기한 재미를 보장한다. 길 양쪽과 오십천변에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등 꽃나무가 심어져 있다. 봄의 흐름에 따라 차례로 꽃을 피운다.
■호랑이 꼬리 일주 925번 지방도로(경북 포항시 대보면)
매년 1월 1일이면 주차장이 된다. 한반도의 동쪽 끝에서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길은 대부분의 기억 속에 동트기 전의 어둡고 짜증스런 도로로 남아있다.
그러나 포항시 호미곶을 일주하는 925번 지방도로(일부 지도에는 912번 도로로 나와 있음)는 한반도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해안도로이다. 포항시 동해면 약전마을에서 시작해 남구 구룡포에 이르는 약 30㎞ 구간이다.
길은 영일만을 왼쪽에 두고 시작된다. 만 건너편에 있는 거대한 포항제철의 굴뚝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앞으로 비취빛 파도가 넘실댄다.
봄이 출렁대는 듯하다. 하선대, 홍환해수욕장 등 아름다운 명소에 정신이 쏠린 채 길을 달리다 보면 거대한 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높이 26.4㎙) 오래 된 장기곶 등대이다.
1903년에 완공됐으니 일백살이 다 됐다. 등대 옆에 등대박물관이 있다. 지금은 내부 수리 중이어서 사전에 협의하지 않으면 구경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등대 바로 앞으로 검은 너럭 바위가 바다 위로 드리워져 있다. 이 곳이 일출을 감상하는 포인트이다.
장기곶에서 구룡포로 향하는 13.5㎞ 구간은 크고 작은 해변의 연속이다. 아름답다. 물론 하루 중에서 아침 풍광이 가장 좋다.
구룡포는 근해 어업의 중심기지. 꽁치, 대게, 오징어가 주된 어종이다. 동해안 어장의 60% 이상을 담당한다. 따끈한 복어국이 유혹한다. 대파와 미나리를 넣고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 복어국은 아침 해장국으로 일품이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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