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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한국인 이렇게산다] (10)채식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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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한국인 이렇게산다] (10)채식하는 사람들

입력
2001.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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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빨 보세요 어디 고기먹으라고 네모로 생겼나요?잔인한 살육과 도축의 포악성, 비만이나 성인병을 유발하는 건강의 적, 육식. 그 오래된 인류의 '폐습'을 우리네 식탁에서 몰아내자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다. 채식주의자.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치는 육식'('배스킨 라빈스'상속자 존 로빈스의 저서명) 대신 그들은 식탁의 자연주의, 채식을 선택했다.

멀리 보릿고개를 넘어 적어도 식탁에서만큼은 서구의 풍요를 따라잡은 2001년 한국. 질병의 유형이나 발생, 식생활의 패턴이 갈수록 서구를 닮아가는 이 땅에서도 채식주의는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건강식으로, 환경오염이나 동물학대와 같은 윤리적 문제를 낳고 있는 육식의 안티 테제로 힘을 얻고 있다.

종교적 이유와는 무관하게 채식만을 고집하는 순수 동호인 모임도 활발하고, 채식 전문식당도 늘고 있다. PC통신 하이텔(vega)이나 천리안(vege), 인터넷 포털 다음(채식사랑, 지구사랑), 프리챌(생명채식동호회) 등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공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포이동의 'SM채식 뷔페'를 비롯해 '시골생활 건강식당' '산골채식 건강식당''뉴스타트 건강식당' 등 전문점들도 성업 중이다.

"사람의 네모난 이빨을 잘 보세요. 사자나 표범 같은 육식 동물과는 달리 풀을 끊어먹기에 적합하게 생겼잖아요."채식운동단체 '푸른생명 채식연합'의 회원인 이승섭(33ㆍ베지푸드 대표)씨는 동물성 식품은 계란이나 우유도 입에 대지 않는 골수 채식주의자이다.

채식을 처음 시작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인 1993년 5월. 당시만 해도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도 잘 먹으려 들지 않았던 평범한 젊은이였다. 학교 앞에서 자취 생활을 하던 이씨는 어느날 밤 "달그락 달그락"신경을 긁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부엌을 샅샅이 살피던 그는 소스라치며 놀랐다. 된장찌개 감으로 저녁나절 사다 놓은 조개들이 하나 둘씩 입을 벌리며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느끼게 해 준 이날 '사건' 이후로 그는 채식을 결심했다.

푸성귀만 먹다 보니 처음엔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영양부족으로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만 같았다. 직장에 들어간 뒤에는 회식 자리마다 동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채식 습관이 오래될수록 몸은 점점 가뿐해졌고,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생겨났다.

소문난 골초에 애주가였지만 채식을 하면서 술과 담배는 자연스럽게 끊게 됐다. "입맛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순해지면서 혀부터 독성 있는 기호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권유로 뒤늦게 채식을 시작한 아내는 임신기간 중 고기와 생선 대신 우유와 곡물, 야채와 과일만으로 영양을 섭취했지만 3.2㎏의 정상체중을 가진 딸 지혜를 순산했다. 일곱 살이 된 지혜는 오늘까지 잔병치레 한 번 없이 건강하다.

이씨는 99년 1월 콩 소시지나 콩 햄버거, 밀고기 등을 만들어 보급하는 채식 전문업체 '베지푸드(www.vegefood.co.kr)'를 설립했다. 생명에 대한 외경에서 출발한 채식습관이 이제 생업이 된 셈이다.

"채식이 몸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혀에서 육식의 기억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이제부턴 대중의 기호와 입맛에 맞는 다양한 채식 제품을 개발해 채식의 저변확대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왜 채식인가? 채식 운동가들은 건강과 환경, 윤리의 세 측면에서 채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육식은 암이나 고혈압, 심장병 같은 성인병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산림훼손이나 식수오염 따위의 환경문제를 만들고, 소중한 생명을 학대하고 살육하는 윤리적 문제까지 얽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20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 하이텔 채식동호회는 채식의 취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한 근이 채 못 되는 소고기를 얻기 위해선 7㎏의 곡물과 콩, 그리고 1만 톤의 물이 필요하다. 1,350㎏의 콩과 옥수수는 22인분의 식사량이 되지만 소에게 먹여 고기와 우유를 얻을 땐 겨우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에 불과하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해 육식을 계속할 것인가."

평생 한번도 날갯짓을 해보지 못하고 알만 낳는 양계장의 닭들, 스트레스 때문에 동료의 꼬리를 물어 뜯는 돼지들, 끊임없는 우유 생산으로 유선염에 시달리는 젖소들.. 오로지 인간의 식습관을 충족시키기 위해 처참히 희생당하고 있는 사육장의 가축들 역시 채식주의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채식주의자라는 대만에 비하면 우리의 채식운동은 아직 걸음마 단계. 제7일 안식일교회나 불교 등 일부 종교인들까지 포함하더라도 순수 채식인구는 40만~50만 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광우병이나 구제역 등 지구촌 곳곳에서 출몰하는 세기말적 역병의 영향으로 채식에 눈을 돌리는 잠재인구는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오늘도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비건·락토·페스코… 채식주의자도 級이 있다

채식주의자는 풀만 먹나? 물론 아니다. 채식주의자 중에는 생명체로부터 채취하는 벌꿀이나 우유도 피하는 '비건', 우유와 치즈 같은 유제품은 먹지만 계란은 피하는 '락토', 유제품과 계란까지는 허용하는 '락토오보', 여기에 생선까지도 먹는 '페스코' 등이 있다. 국내 채식주의자들은 대부분 '락토'나 '락토오보'에 해당된다.

채식자들을 위한 식품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요즘엔 '비건' 같은 골수 채식주의자라 하더라도 '고기'를 맛 볼 수 있게 됐다. 밀이나 콩, 두부, 버섯 따위로 만드는 '식물성 고기'다.

재료는 엄연히 식물성이지만 모양이나 색깔, 맛이나 질감이 영락없이 고기를 닮은 이 육류 대체 식품은 채식 붐을 타고 일반인 사이에도 건강식으로 인기다.

식물성 고기의 원료는 크게 밀가루와 콩, 두 가지. 밀가루 반죽을 찬 물에 넣고 계속 주무르면 찰고무처럼 질긴 점액질(글루텐)만 남게 되는데, 이를 얼렸다 사용하는 것을 '밀고기', 콩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만든 것을 '콩고기'(베지버거)라고 부른다.

웬만한 채식 전문식당에 가면 밀고기 탕수육이나 돈가스, 밀고기 장조림이나 잡채, 콩고기로 만든 햄이나 소시지 요리 등을 맛 볼 수 있다. '베지푸드' 같은 전문업체는 인터넷 등을 통해 육류대체 식품을 팔고 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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