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업계에 산업스파이 비상이 걸렸다.자금난으로 연구원 확보와 기술 개발이 어려워진 일부 벤처가 경쟁 업체의 기술을 훔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전화기 생산업체인 ㈜이브릿지컴(대표 김찬욱)은 13일 다른 인터넷전화기 업체 임원 박모씨를 절도미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인터넷 전화기용 핵심 PCB(인쇄회로기판)를 전문업체에 의뢰해 제작하던 중 이브릿지컴의 개발실장을 사칭한 인물이 회로설계도를 e-메일로 보내달라고 한 것.
이 회사 관계자는 "e-메일을 추적한 결과 경쟁업체의 임원인 박씨 소유로 밝혀졌지만 박씨가 혐의를 부인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말로만 듣던 산업스파이 사건을 직접 당하니 어이가 없다"고 밝혔다.
서울 테헤란 밸리의 W사와 P사는 최근 수년간 개발해온 소프트웨어가 담긴 데스크톱과 노트북을 통째로 도난당해 경찰에 신고했다.
W사측은 "10년간 공들여 제작해온 기업용 프로그램을 노린 경쟁업체의 소행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LG전자 출신의 한 벤처기업 여사장은 최근 전 직장의 디지털TV기술을 CD에 담아 훔쳐낸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국내 업체의 기술력을 탐낸 외국인들의 산업스파이 행각도 늘어나고 있다. 동영상표준인 MPEG4 솔루션 개발업체인 M사의 심모 사장은 지난달 해외에서 개최된 솔루션 개발자 포럼에서 기술을 도난당할 뻔 했다.
심사장은 "한 외국인이 미국 대학원생이라며 연구용으로 필요하니 원천기술을 알려달라고 요청해왔다"며 "개발자끼리는 신분이 확실하면 기술을 공유하는 암묵적 동의가 있어 도면을 보여주려다 의심스러워 확인해보니 경쟁 업체인 미국 P사의 엔지니어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산업스파이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해킹 사고도 빈번히 일어나 정보보호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을 대상으로 한 해킹사고는 전년 대비 4배 증가한 818건에 달했다.
정보보호센터 관계자는 "해킹능력 과시를 위한 차원을 넘어 경쟁업체의 정보를 훔치기 위한 산업스파이 형태의 해킹이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개발자들끼리 기술공유나 비교를 위해 솔루션을 돌려보는 과정에서 산업스파이가 개입할 여지가 크다"며 "특히 대기업 출신 엔지니어의 경우 과거 1980년대 해외 제품을 모방하던 얘기를 무용담처럼 하는 등 모럴 해저드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황종덕기자 lastrad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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